宋교수 정치국 후보위원 결정
"김용순이 직접 내게 말해줘"


다음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999년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 요약이다./ 편집자

송두율 교수와 저의 교제는 1991년 5월 송 교수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접견을 받고 접견내용이 95년 5월 25일자 노동신문 1면에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된 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송 교수의 김일성 접견 후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저에게 전화로, 송 교수에게 주체사상 교육을 해주어야겠는데 통일전선부 산하에는 유능한 학자가 없기 때문에 제가 담당하고 있는 부서에서 주체사상 전문학자를 동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송 교수는 남한에서도 영향력이 크고 특히 독일에서 다년간 조직사업을 하다 보니 독일에 와 있는 남한 유학생들이 다 그를 따른다’고 하면서 ‘위(김일성)에서 송 교수를 앞으로 크게 쓸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의 이름을 '김철수'로 부르기로 하였다는 것도 부연했습니다.

저는 직속 비밀연구소 실장인 이성갑 교수와 부실장 박승덕 교수를 파견하여 송 교수에게 주체사상 강의를 해주도록 조직하였으며, 그 후 김일성대학 철학부장 김영춘 교수를 다시 파견했습니다.

그후 몇 달이 지난 다음 통일전선부 담당비서인 김용순이 저에게, ‘송두율은 자본주의 철학을 많이 공부하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철학을 잘 모르는 우리나라 젊은 학자들의 강의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비서인 제가 직접 만나보고 지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송 교수는 젊고 또 청년들 속에서 인기도 있기 때문에 장래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위에서 그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내세우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그후 저는 송 교수를 몇 번 만나 주체철학에 대하여 좌담했습니다. 저는 통일전선부의 부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저의 주체사상 선전을 위하여 송 교수를 이용할 생각으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체철학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도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저를 꼭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출장중이거나 정 시간을 낼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꼭 그를 만나주었습니다.

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생전에 김일성과 친분관계가 두터워 김일성상까지 받은 독실한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평양을 방문하여 조의를 표시하겠다는 것을, 이 부문 담당비서였던 저를 통하여 간절히 요청하여 왔으나 김정일은 이 모든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오직 송두율 교수만을 초청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송 교수가 '김철수'의 가명으로 김일성 장의위원회 위원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며, 장의위원회 명단은 당시 노동신문에도 보도된 바 있습니다.

외국에 있는 학자들 가운데서 조총련의 중요한 학자들도 다 오지 못하고 오직 송 교수 한 사람만이 김일성의 장례식에 초청되어 평양을 방문한 것은 공개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내가 어느날 송두율을 만나 담화하면서 ‘일본 요코하마 국제토론회에서 남한 학자를 만나 담화하였는데 매우 똑똑하더라’고 칭찬하자, 송 교수는 ‘그놈은 떨떨한 놈입니다. 그놈이 사상적으로 견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조직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는 변절자입니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조직책임자로서 공산주의 신념에 철저하다는 것을 과시했습니다.

내가 송 교수에게 독일 백림(베를린)대학에서 주체사상 토론회를 조직할 수 없겠는가 물었더니, 그는 자기가 백림대학의 정교수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 자기 힘으로 주체사상 국제토론회를 조직하기 어려운데, 한 1년 후에 자기가 정교수 자격을 얻게 되면 주체사상 토론회를 조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송 교수는 남한의 ‘말’ 잡지사가 조선역사와 관련한 백과사전을 발간할 계획인데, 거기에 주체사상이라는 항목이 들어있다고 하면서 200자 원고용지로 100매 가량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글을 내면 남한에서 주체사상을 선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저의 직속연구실 학자들의 방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제기했습니다.

저는 실장인 이성갑 교수에게 과업을 주어 주체사상에 관한 원고를 만들어주도록 했습니다. 그 원고는 제가 처음에 방향을 주고 마지막에도 검토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송 교수는 다음해 찾아와서, ‘남한에서 글을 내려면 남한 어투로 해야지 북한 어투로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가 고친 것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읽어보니 내용이 매우 빈약하였으며 서방 학자들의 인용문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후 어떤 계기에 김용순 비서를 만나 송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송 교수가 너무 자본주의 사상에 물든 관계로 머리가 아직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데 후보위원을 시켰더니 좀 건방지게 되어 통일전선부 일꾼들의 말도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송두율이 김철수의 이름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은 저의 직속 연구소 학자들은 물론, 주체과학원의 간부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송 교수는 자기가 외국 국적인데 어떻게 당원이 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하는데, 북한 노동당에서는 당원들을 일부러 외국 국적으로 만들어 해외에 나가서 대남공작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송 교수가 노동당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부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반드시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송 교수가 이러한 역사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 부정한다면 스스로 학자로서의 생명을 버리고 자기 인격을 더럽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가 송 교수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제가 북한 노동당 사상담당 비서 겸 국제비서였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이상은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직접 경험했던 사실을 그대로 진술한 것입니다.

만일 송 교수가 저의 진술을 부정한다면 송 교수도 법정에 나오도록 하여 저와 대질신문에 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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