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번 러시아 방문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단언하지 못하고 있지만 대체로 ‘무기 도입’ 요청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러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군사협력 문제 해결을 통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앞당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북한은 작년 이래 러시아측에 대공 레이더 시설, S-300 대공 미사일, 최신예 탱크 등 최신 무기 제공을 요청해왔으나, 러시아측이 차관 아닌 미화(美貨) 현금 결제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었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지난 23일 북한 군사실무자들이 모스크바의 방산업체를 방문한 것도 이번 김 부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됐을 것으로 정부는 분석했다.
김 부장은 27일 방위산업 담당 일리야 클레바노프 부총리,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과 회동한 뒤 ‘방위산업 및 군사장비 분야 협력 협정’과 ‘2001년 군사 협력 협정’을 각각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제트 전투기, 무인 프첼라(PCHELA)-1 정찰기 등 모두 3억5000만파운드(약 7000억원) 상당의 무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대미(대미) 관계, 대한(대한) 관계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고, 대신 과거 북한측에 제공됐던 러시아제 무기의 현대화 작업과 북한 군 인력 양성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 등 군사 협력 문제에 대해서만 합의했다고 한국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김 부장은 또 작년 2월 양국이 체결한 우호·선린 조약의 ‘한반도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빠지고 대신 ‘상호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어 과거 소련 시절의 군사협력보다 현저히 약화된 규정의 보완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 부장이 이를 문제 삼아 이바노프 국방장관 등과 회담에서 약화된 군사협력 분야의 지원을 약속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김일철 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군 실세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단순히 군사협력 논의에 그치지 않고,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재차 협의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초 4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북한측의 무리한 군사원조 요청과 차관공여 요청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한 국제 여론을 의식, 김 부장은 군사 분야에 관한 러시아측과의 재협상을 통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정병선기자 bs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