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김일철(金鎰喆·차수) 인민무력부장이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동안 러시아를 전격 방문한 뒤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의 이번 러시아 방문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단언하지 못하고 있지만 대체로 ‘무기 도입’ 요청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러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군사협력 문제 해결을 통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앞당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북한은 작년 이래 러시아측에 대공 레이더 시설, S-300 대공 미사일, 최신예 탱크 등 최신 무기 제공을 요청해왔으나, 러시아측이 차관 아닌 미화(美貨) 현금 결제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었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지난 23일 북한 군사실무자들이 모스크바의 방산업체를 방문한 것도 이번 김 부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됐을 것으로 정부는 분석했다.

김 부장은 27일 방위산업 담당 일리야 클레바노프 부총리,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과 회동한 뒤 ‘방위산업 및 군사장비 분야 협력 협정’과 ‘2001년 군사 협력 협정’을 각각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제트 전투기, 무인 프첼라(PCHELA)-1 정찰기 등 모두 3억5000만파운드(약 7000억원) 상당의 무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대미(대미) 관계, 대한(대한) 관계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고, 대신 과거 북한측에 제공됐던 러시아제 무기의 현대화 작업과 북한 군 인력 양성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 등 군사 협력 문제에 대해서만 합의했다고 한국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김 부장은 또 작년 2월 양국이 체결한 우호·선린 조약의 ‘한반도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빠지고 대신 ‘상호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어 과거 소련 시절의 군사협력보다 현저히 약화된 규정의 보완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 부장이 이를 문제 삼아 이바노프 국방장관 등과 회담에서 약화된 군사협력 분야의 지원을 약속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김일철 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군 실세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단순히 군사협력 논의에 그치지 않고,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재차 협의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초 4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북한측의 무리한 군사원조 요청과 차관공여 요청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한 국제 여론을 의식, 김 부장은 군사 분야에 관한 러시아측과의 재협상을 통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정병선기자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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