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문 방송은 사건 사고를 다루지 않는다. 수백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가 일어나도 기사 한 줄 찾아 볼 수 없다. 권력층 내부의 움직임도 전혀 기사로 보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북한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났는지 대개는 다 안다. 반체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알고 권력층 내부의 동태도 대충 파악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북한에서 처럼 딱 들어맞는 곳도 드물 것이다. 공개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문에 민감하다. 소문은 대부분 사실로 판명된다. 다소의 과장은 섞이더라도 사실 자체는 정확한 편이다. 남한에서는 언론이 다루지 않는 소문을 들으면 대개 “정말이야?”라고 일단 반문해 보지만 북한에서는 소문을 그냥 믿는 편이다. 소문외에는 정보를 얻을 통로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고, 또 헛소문을 잘 만들어 내지 않는다.

정보에 목말라 있는 주민들은 누가 지나가면서 하는 소리도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다. 때문에 소문이 퍼지는 속도도 아주 빠르다.

북한의 진짜 살아있는 뉴스를 들으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평양~두만강, 평양~신의주간의 열차가 한번 왕복하면 그 날로 전국의 주요 소식들은 각 지방으로 퍼지게 된다. 평양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다면, 그 직후 평양을 출발한 기차가 신의주에 도착할 때면 사건 소식도 정확히 신의주에 도착하게 된다. 지방의 소식이 평양에 전해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기차 안이 정보의 보고가 되는 것은 자기 신분이 노출되지 않고 한번 만났다가 헤어지면 그만이기 때문에 비교적 속에 있는 말들을 터놓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면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술잔을 나누는 게 자연스런 풍경이다. 그러다 보면 온갖 이야기가 오가고 분위기에 따라서는 체제비판적인 발언까지 나오기도 한다. 남한에서처럼 옆사람과 한마디 인사도 나누지 않는 장면은 북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정보의 중심은 단연 평양이다. 특히 중앙당간부들의 자녀가 많은 외국어대학이나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유명대학은 온갖 정보들이 흘러나오는 곳이다. 부모가 고위간부일수록 주변의 친구들은 감시도 심하지만 짭짤한 소식도 많이 들을 수 있다. 집에서 부모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와서 학교동료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고,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하기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다.

근거 있는 소문이 퍼질 때에는 보위원들이 소문의 근원지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보위부에서는 사람들이 소문을 믿는 심리를 이용해 역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 남한에서 풍선에 담겨 날아오는 물건이나 음식에 독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영화배우 우인희 총살사건,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마유미’ 이야기, 통일거리 아파트붕괴사고, 6군단 사건, 각종 기차사고 등은 전국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 이를 모르면 ‘간첩’ 취급 당할 정도였다.

우인희는 워낙 유명한 배우라 그의 불륜과 총살당한 사실은 금새 알려졌다. ‘마유미’ 사건도 그가 다녔던 평양외국어대학에서부터 시작돼, 그의 본명이 김현희이며 “남조선비행기를 격추시켜 큰 일을 했다”는 식의 소문이 쫙 퍼졌다. 북한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마유미가 김현희이며 그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국제정세는 단파라디오를 이용한 남한방송에서 많이 접한다. 특히 1985년 이후부터 젊은이들 속에서는 남한방송 듣는 것이 급속히 번졌다. 남한소식도 이를 통해 퍼져나가게 된다. 워낙 폐쇄된 사회라 근거 없는 소문들도 떠돌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거짓과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있고, 같은 소문일지라도 여러 군데서 들려오기 때문에 진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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