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가 천지개벽(天地開闢)됐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월 중순 중국 상해 방문 때 푸동지구의 첨단 산업단지를 돌아보고 한 이 말은 그의 개혁개방 의지를 상징하는 문구처럼 됐다. 그러나 20년전 김일성 전 주석도 80년대 초 중국 심천 특구를 방문, 그곳의 변화상을 목도한 뒤 역시 ‘천지개벽’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이 최근 우리 정부 관계자들에게 북한이 김정일의 상해 방문 이후 중국식 개방 모델을 배우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한 중국 공산당 관계자는 “김일성 주석이 천지개벽 운운 해놓고 실제로는 심천특구식 개방 정책을 펴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에서 천지개벽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별로 두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상해 방문 직후 북한의 관영매체들이 그의 천지개벽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길래 이번에는 뭔가 중국식 개방 모델을 수용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으나 그 뒤 북한이 중국식 개방 정책을 배우기 위한 대표단조차 파견하지 않자 실망했다고 한다.

북한이 중국식 개방 모델을 따를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이미 김 위원장의 방중 기간에 어느 정도 엿보였다고 한다. 주용기 중국 총리가 김 위원장의 푸동지구 시찰을 수행한 뒤 김 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갖고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개방을 권유했으나 당시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김일성이 천지개벽 발언을 했다는 심천 특구 방문 시기는 공식 기록에 나오지 않아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대개 1983년 말이나 1984년 초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1984년 9월 외자 유치를 위한 합영법을 제정, 발표한 배경에는 김일성이 이 무렵 심천특구 등을 둘러 보고 중국처럼 대담한 특구식 개방을 하긴 어렵지만 외자 도입을 통한 생산력 증대를 위해선 합영법정도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1980년대 초반 등소평이 ‘특구’라는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편데 반해 김일성이 고작 ‘합영법’이라는 소극적인 정책에 머문 것이 그 후 양국의 경제력 차이를 규정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정일의 상해 방문 이후 북한이 여전히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있어 등소평과 김일성의 인식 차이로 인한 중국과 북한의 현격한 생산력 차이는 장쩌민과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서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