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전 풀은 독초 빼고는 다 먹는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의 식량난이 4년 전보다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5월중 식량배급이 중단될 위기라고 밝혔다. 최악의 춘궁기가 북한 주민들을 엄습하고 있다. 식량이 떨어진 북한 주민들은 사력을 다해 먹을 것을 찾고 만들어 낸다. 다음은 탈북자 장인숙씨가 북한에서 먹었던 ‘대용 먹거리’들이다.

◆풀떡

1997년 초여름에 나왔다. 단오전의 모든 풀은 독초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며 당국이 권장한 ‘식량’이다. 풀을 베어서 잘 분쇄해 우려내는데 밑에 가라 앉은 것을 ‘풀농마’라 한다. 제분한 풀에 "만경대 1호균" 이라는 특수화학제를 첨가하는데 이것이 풀의 독성을 제거한다. 녹말가루와 풀찌거기를 각각 전분가루에 섞어서 풀떡을 해 먹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고안해 낸 연구자들에게는 훈장과 명예칭호 등이 수여되었다고 한다. 풀 분쇄기를 공장마다 설치하게 하고, 종업원들의 점심으로 풀떡을 공급하라고 했다. 풀 분쇄기를 설치하지 않은 공장의 지배인들은 처벌까지 받았다.

그러나 풀의 섬유질이 속에 상처를 내기 때문에 풀떡을 먹는 것은 여간 고통이 아니다. 사람들은 “소나 염소도 제가 먹고 싶은 풀을 먹는데 사람이 어떻게 아무 풀이나 먹는가”고 불평했다. 결국 기계만 만들어놓고 풀떡은 별로 보급되지 못했다.

◆쑥떡

주 원료가 쑥이고 거기에 약간의 전분(밀가루나 옥수수가루)을 섞어서 만든다. 쑥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떡쑥, 모기쑥, 물쑥, 기름쑥, 제비쑥 등등. 단오(북한에서는 양력 5월5일)전의 쑥은 푹 삶아서 하루 밤 물에 우려낸 다음 꼭 짜서 그것을 다시 절구에 찧고 거기에 전분과 섞어 가마에 찌고 그것을 다시 절구에 찧어서 떡을 빚는다. 그런데 전분을 충분히 넣을 수없기 때문에 된반죽이 안돼 그저 손으로 두루 뭉개고 그릇에 담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경우가 많다. 쑥떡에 기름을 바르고 사카린을 물에 타서 조금만 바르면 최고의 떡이 된다. 소금이 없어서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할 때도 있다.

◆나물 범벅이

돋아나는 순서대로 냉이가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 온갖 산나물 들나물을 뜯어서 삶은 다음 거기에 약간의 전분 가루를 섞어서 시루에 쪄서 먹는다. 나물이나 전분이 모자라면 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옥깍지

옥깍지는 옥수수알의 껍질로, 옥수수알을 강냉이쌀(옥수수를 쌀 크기로 쪼갠 것)로 만들 때 나온다. 사료용으로 쓰이던 옥깍지를 이제는 사람들이 먹는다. 옥깍지와 옥수수를 섞어 가루를 낸 다음 그것으로 국수(건면)도 하고 빵, 떡국 등을 해먹는다. 이것은 수준급의 대용식량이다. 그러나 옥깍지가 절반 이상이면 제분이 잘 안된다.

◆콩비지

두부찌꺼기인데 제일 좋은 대용식량이다. 나물이나 남새(채소)에 섞어서도 먹고, 거기에 전분 가루를 섞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든다. 주로 비지떡을 해먹는다. 콩비지는 부식물이 아니고 주식에 속한다. 콩비지를 콩과 섞어서 된장을 담그기도 한다. 된장을 제대로 담그는 집은 상당한 ‘부유층’에 속한다.

◆술죽

술찌꺼기를 말한다. 이것을 돼지에게 먹이면 창자가 얇아진다고 하여 겨에 섞어 조금씩 먹였는데 지금은 사람이 먹는다. 매우 시큼하기 때문에 물에 오래 담궈 냄새를 제거한 다음 자루에 넣고 꼭 짜서 약간의 전분가루 소금 사카린 등을 섞어 빵이나 떡으로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다.

◆엿밥

엿을 만든 찌꺼기다. 당분이 다 빠졌기 때문에 점성이 전혀 없다. 이것 역시 전분가루에 섞어 빵이나 떡을 만드는데 대용식량으로는 최상이다

◆옥수수대속과 뿌리

옥수수대의 껍질을 벗기면 나오는 흰 속대와, 뿌리를 깨끗이 씻어 말려서 이것을 옥수수와 적당량을 배합하여 제분하여 주식으로 먹는다. 당에서 이를 권장했다. 소가 밟으면서 잎을 뜯어 먹고 난후에 그 옥수수대의 속을 사람이 먹으라고 하니 "소보다 못한 인생"이라는 한탄이 나왔다.

◆송기떡

소나무 껍질을 벗겨 우리고 짓찧어서 전분 가루와 섞어 만든 떡이다. 이걸 많이 먹으면 변비로 고생하고 심하면 사람이 죽게 된다. 그나마 사람들이 야산의 소나무 껍질을 마구 벗기는 바람에 벌거숭이가 되자 당에서 엄중 단속하였다.

◆느릅 국수

산에 흔히 있는 느릅나무의 뿌리 껍질을 벗겨 말린 뒤 찧어 갈아 옥수수가루와 섞어 국수를 만든다. 소화가 잘 되고 속이 편해 주민들이 그나마 즐기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별미’ 건강식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방의 특성에 따라 많은 것이 먹을 거리가 되고 있다.

/장인숙(60ㆍ함북 온성 거주ㆍ97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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