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형극장에서 공연되는 인형극을 보며 즐거워하는 북한의 어린이들. 북한 해외홍보용 화보 '등대'에 실린 사진이다.

"북한에도 유머가 있나?", "북한 사람들도 웃을 때가 있나?" 남한에 온 뒤 어린 학생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TV에서 방영되는 무표정한 모습의 평양 사람들, 반도체칩처럼 잘 정비된 열병식장의 군인들이나, 한치 오차도 없이 카드섹션을 해내는 학생들의 모습만을 보아온 남한사람들이 이런 북한의 모습과 웃음을 연결시키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더욱이 90년대 들어 악화된 식량난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사람들의 모습과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에서 헤매는 "꽃제비"들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사람들에게 웃음이란 사치스러운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도 웃는다. 그들도 소박하게 웃고, 빙그레 미소짓기도 하며, 큰소리로 웃어제끼기도 한다. 식량난으로 학교생활이 파탄 지경에 이르기 전까지는 학생들도 남한의 학생들과 다를 게 없었다. 뒤에서 선생님의 별명을 지어 부르고, 배우와 가수의 흉내를 내며 자지러지게 웃기도 한다.

어느 집단에나 "웃음 제조기" 역할을 하는 끼 있는 친구들이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이다. 북한 노래를 부르는 외국인 흉내, 배우들의 목소리 흉내, 지방별 사투리 만담을 만들어내 주변의 친구들을 웃기곤 했다. 북한 가요를 유머러스한 가사로 바꿔 부르는 "바꿔 열풍"도 분 적이 있다. 사춘기에 든 소년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아 사랑이나 성에 대한 우스개를 주고 받기도 한다.

사회를 풍자하기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비리를 풍자한 "당일군은 당당하게 먹고, 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먹고, 안전원은 안전하게 먹는다"는 얘기는 이제 고전에 속한다.

노임을 거의 받지 않고 무상 노동을 하는 돌격대원들이 현장 주변의 민폐를 많이 끼치기는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노인이 돼지를 훔쳐가는 돌격대원에게 “이 자식들아. 왜 우리집 돼지를 함부로 훔쳐 가느냐"라고 호통을 치자 "영감, 철길 나준다지 않소" 라고 받아친 얘기가 들려왔다. 그것을 그대로 응용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끼는 물건을 집어가면서 "성내지 마, 내가 철길 나줄게"하는 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냈다.

90년대 후반 북한 경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최악의 식량난이 닥쳐왔을 때 북한의 웃음은 사라져 버렸을까? ‘두 번씩이나 실연을 당하는 바보가 돼 세상 비웃음을 산다해도 나는 웃으리라. 웃다가 죽으리라’고 했던 독일시인 하이네처럼 어려운 북한의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웃음만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많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 시절에 비해 북한 권력층에 대한 풍자와 조소가 늘어났다는 것. 순천비날론 공장이 서면 인민들의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은 하지 않게 된다는 북한 당국의 허풍을 조소하여 "순천만 서보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친구가 애인이 없어 외롭다고 해도 "걱정마. 순천만 서면 애인도 생겨"라고 당국에 대한 조소성 멘트를 날리곤 했다.

김 부자의 생일에만 육류를 공급하는 사실을 놓고 “북한 사람은 모두 채식주의자협회 열성회원"이라고 풍자했다. 중국 영화 "아큐정전"을 보고서는 ‘북한은 아큐민족"이라고 자탄하는 유행어도 등장했다. 돼지고기햄이라는 식품이 어쩌다 위대한 ‘수령님의 배려’라며 공급될 때도 평양시 주변구역은 주지 않고 중심구역에만 준 것을 두고 "한반도의 비햄지대화"라고 풍자했다.

"사회주의는 우리 거야"라는 가요가 만들어지면 "우기지 않아도 가지겠다는 나라는 없을 텐데"라고 받아치며 웃기는 친구들이 있었다. 북한 당국이 보통사람들에게는 태국에서 들여온 "안남미"를 공급하면서 보위원들에게는 입쌀(백미)을 계속 공급할 때에는 “영양가 없는 안남미 먹은 백성들이 힘이 없어 비칠거리며 반항하면 이팝과 고기 먹은 보위부와 군대가 힘으로 단숨에 진압하기 위한 천리 혜안의 예지를 가진 우리 당의 전략적 선택”이라며 조소하기도 했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북한사회지만 누구나 흉허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한 친구는 있게 마련이어서 나도 친구들과 권력자에 대한 조소와 풍자를 나누며 우정을 쌓았고, 엄혹한 북한사회를 가끔씩이나마 웃으며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지성·평양음악무용대학 졸업 ryug13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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