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에서 ‘종자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런 바람은 북한이 새해 공동사설을 통해 "농업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 당이 제시한 종자론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6일 1면 전체를 할애한 장문의 논설에서 "종자론은 종자를 발견하고 창조하며 잘 가꾸게 함으로써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는 종자혁명사상"이라면서 종자론을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 비유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종자론이 등장한 것은 73년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다. 김 위원장은 60년대 초 문예부문을 지도하면서 이따금씩 "종자"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그가 "영화예술론"에서 문예작품 창작이론으로 제시한 종자론이 처음이다. 이후 74년 2월 속도전이론이 제시되자 종자론과 속도전이론의 결합이 시도되고, 같은해 5월 출판보도부문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이른바 "5·7문헌"이 발표되면서 출판보도부문으로 그 외연이 확대됐다.

종자론에서 말하는 종자란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와 예술인들이 말하려는 기본 문제와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로 설명된다. 예컨대 혁명가극 "피바다"의 종자는 수난의 피바다를 투쟁의 피바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꽃파는 처녀"의 종자는 설움과 효성의 꽃바구니를 투쟁과 혁명의 꽃바구니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주체문학예술의 총화라 일컫는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운명이 곧 개인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결국 종자론의 핵심은 사상성과 생산성(예술성)으로 집약된다. 과거 문예부문이나 출판보도부문에 제시된 종자론이 사상성에 좀더 무게를 두었다면 최근의 종자론은 생산성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은 최근 종자론의 지평을 각 부문으로 넓혀나가자고 역설하면서 먼저 농업과생물학분야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종자가 수확고와 품질, 생산속도를 규정한다는 생산성의 전제를 깔고 있다. 최근 평양남새과학연구소에서 한 개의 무게가 수백g 나가는 가지를 육종했다(노동신문, 3.5)거나, 평양안학고등중학교에서 한 마리의 무게가 4.5∼5kg, 심지어 7.5kg 나가는 토끼를 기르고 있다는 보도는 그런 전제를 뒷받침한다.

또 노동신문이 최근호(3.18)에서 "발쪽(발) 하나가 어른 손바닥만한 닭이 있다"면서 보통 닭은 6개월 이상 품을 들여 길러야 잡아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으나 발쪽 하나가 어른 손바닭만한 닭은 비육속도가 빨라 한달 남짓 기르면 너끈히 잡아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자론이 각 분야로 확산되면서 강성대국 건설의 사상이론적 논거로 자리잡게 될지 일회성 구호로 그칠지 두고볼 일이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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