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비날론연합기업소

북한에도 다리매(각선미)에 자신 있는 멋쟁이 여성이 적지 않지만 그것을 과시할 기회는 거의 없다. 당국의 통제도 통제지만 워낙은 다리매를 받쳐줄 얇고 투명한 나일론 스타킹을 구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 섬유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화학섬유인 비날론과 스프사(staple fiber)다. 나일론은 평북 신의주의 신의주화학섬유공장 등에서 일부 생산되고 있으나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공급이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비날론은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북한이 자체 개발한 폴리비닐알코올계 합성섬유로 면을 대신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대중적 섬유로 자리를 잡았다.


◇ 북한의 ‘주체 섬유’ 비날론으로 만든 솜을 근로자들이 다듬고 있다. 북한의 홍보책자에 실린 사진이다.

북한은 비날론이 "생산비가 적게 들면서도 자연섬유나 인조섬유보다 질이 좋으며 용도가 다양한 경제적 섬유"(경제사전, 평양, 1985)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염색처리가 어렵고, 세탁시 형태가 줄어들며 잘 닳는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촉감이 거칠고 투박해 북한 고위층이나 부유층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비날론을 사용하는 나라는 북한이 거의 유일하다.
북한은 비날론으로 일반 피복용 천뿐만 아니라 군복, 운동화, 밧줄, 이불솜 등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중간과정 연구를 통해 여러 가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비날론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역시 군복이나 비날론솜, 밧줄 등이다.

옷감으로는 군복이나 작업복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데 워낙 질겨 작업복으로 그만이다. 작업복이라 하더라도 무게가 무거워 동복으로는 어림도 없다. 비날론 작업복을 구입할 때는 처음부터 아예 큼지막한 것을 고른다. 빨래를 위해 한 번 물에 담궜다 꺼내면 왕창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 옷감으로는 면이나 나일론, 모 등과 혼방해 사용한다.

비날론솜도 자연솜과 달리 무거운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비날론솜이 들어간 이불은 너무 무거워 몸이 약한 사람은 깔려죽을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북한의 일반 여관에 있는 이불은 거의 비날론솜을 넣은 것인데 너무 무겁고 뻣뻣해 주민들이 "여관이불은 돌이불"이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비날론은 1930년대 말 일본에서 한국인 화학자 이승기에 의해 발명됐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6·25때 이승기가 월북하면서 북한에서 빛을 보았다. 북한은 비날론을 통해 '입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아래 1961년 함남 함흥에 연산 2만t(현재 5만t) 생산능력의 비날론공장을 건설했다. 전국가적인 지원아래 1년 안팎의 짧은 기간에 공장을 건설했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속도전 개념인 '비날론속도'가 창조되기도 했다.

최근 남북경협의 흐름을 타고 남한에서 비날론이 '무공해 미래형 신소재'로서의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한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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