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기를 여는 첫 해에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시대로 획기적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바람은 주어진 해외여건에서 현실시험을 거쳐서 할 것이다. 우리는 평화와 협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외교와 내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남북관계상은 군사위협을 상호감축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신뢰를 구축해서 이미 발효시킨 기본합의서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포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왔다.

그러나 북한당국도 이에 적극 호응하여 우리와 생산적 대화를 재개하는 태도를 보일 것인가?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북한은 ‘페리보고서’에 대응하여 우선 미국-일본과의 협상을 개시할 것이며 남한과는 당국자회담 대신 민간교류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체제를 보호하고 시급한 식량과 경제협력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목적에 부합하는 일정한 조건하에 남북대화도 시도할 것이다. 이 결과 미-북 고위회담과 일-북 수교협상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서히 진전할 것이나 본격적인 남북대화의 큰 결실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미-일의 대북협상이 우리의 전략 목적인 전쟁방지와 화해협력에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끔 한-미-일 공조를 관철하는 동시에, 북한과 실현 가능한 민간교류와 대화를 차근하게 축적해가야 할 것이다. 이 일반적인 원칙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한국은 두 가지 외교-정치적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외교적으로 한반도문제가 또다시 강대국들간의 각축전으로 휘말리지 않게끔 매우 세심한 외교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작년 8월 북한이 대포동1호를 발사한 이후 미사일 방어문제에 대하여 미-중, 일-중, 미-러간에 세력다툼이 가열되었다. 예컨대 미국과 일본이 전역미사일병대(TMD) 체제의 공동 연구를 시작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 결과 재연될 수 있는 군비경쟁을 우려하여 중국은 북한의 대포동2호 발사를 유예시키는 데 건설적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이처럼 4강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에 기여하도록 한국은 미-중 및 일-중 간에 교량구축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은 정치적으로 북한문제가 미국, 일본 및 국내에서 쟁점화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대중국정책은 미 대통령선거전에서 이미 정치쟁점으로 부각했다. 공화당은 이른바 ‘불량(불량)국가’로부터 오는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전국적인 방어체제(NMD)를 구축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7월 이전에 이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여파 속에 북한미사일 문제도 정치화할 것이다. 10월 이전에 총선이 실시될 일본 선거전에서도 북한문제가 쟁점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국내에서 4·13선거를 겨냥하여 대북정책이 정파들간에 정쟁화할 가능성이다. 이러한 현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때 적어도 국내에서만이라도 초당적인 자세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에 대하여 장기적이고도 전략적인 사고로 임해야 한다. 북한도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기술의 세계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북한에서 남한의 한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남북간에 확대되고 있는 민간경제 및 문화교류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포용정책은 평화, 비핵화, 안정 및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긴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화해협력과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는 데는 단호해야 하며 구체적 정책을 이행하고 협상을 하는 데는 신축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 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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