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국제금융의 혜택을 얻어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테러집단」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 현 정부도 대 북한지원의 결정적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북한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보현 국정원 3차장이 엊그제 국회 정보위에서 4년 전 발생한 이한영씨 피살사건이 북한공작원들의 소행이라고 공식증언한 것은 북한이 테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로 남쪽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이씨는 97년 2월15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괴한들에게 피살됐으며, 8개월 뒤인 그해 10월 당시 안기부는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인 최순호 등 특수공작조 2명이 이씨를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했었다.

안기부는 이들이 이씨를 살해한 후 북한으로 돌아가 영웅 칭호를 받았고 향후 다시 남파될 것에 대비해 얼굴 성형수술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기부가 뚜렷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 데다 그해 대선에서 야당이 이런 저런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초점이 흐려졌었다. 그후 당시 야당이던 현 여당이 대북 포용정책을 펴면서 이에 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이제껏 사실상 미제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현 정부 당국자가 이 사건에 대해 명백한 입장을 밝힌 것은 「미제」에 종지부를 찍는 이상의 의미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 화해협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적대적 위치에 있는 안보위협 요인이다.

특히「6·15 선언」이후로는 북한 주적론(主敵論)까지 퇴색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정부주도의 장밋빛 전망 분위기에 휩싸여왔다. 그러나 남북정상이 한순간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었다고 해서 50여년간 수없이 거듭된 북한의 만행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국정원으로서는 사회일각에서 이씨사건을 「안기부 조작」으로 몰고가려는 움직임까지 보여 마지못해 북한의 소행임을 새삼 확인했는지 모르나, 이제 북한이 테러집단임을 사실상 확인한 이상 대북정책도 이에 부응해 신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황장엽씨 일행이 아직껏 국정원 안가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북한의 테러위협 때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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