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자신의 영화문헌고를 가지고 있다. 공식 명칭은 ‘국가영화문헌고’다.

평양시내 한복판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다. 사실상 김정일 개인의 소유물이다. 1961년 처음 만들어졌다. 70년대 초에 김정일이 확장, 개편했다.

정문은 늘 육중한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외부와 차단된 채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주민들은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이곳에 보관돼 있는 영화 필름은 3만여편 정도로 알려져 있다. 스틸사진도 1만5000여장 정도 된다. 동서양과 선·후진국 가릴 것 없이 세계 각국 영화가 있다.

특히 세계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필름이 많이 있다.

직원은 성우, 번역사, 자막사, 영사기사, 녹음기사 등 250여명이다. 이들이 우리말로 번역, 녹음한 영화도 7000여편 된다고 한다.

필름은 국가별로 분류돼 있다. ‘남조선실’에는 한국영화도 300여편 정도 있다. 제목과 제작년도, 출연배우, 감독과 제작진의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납북(78년)된 후 이곳을 찾았던 신상옥 감독은 “과거 내가 만든 영화 가운데 한국에서는 이미 구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모두 보관돼 있었다”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필름수집 방식은 다양하다. 정식으로 수입한 예는 드물다. 국제영상자료연맹(FIAF)을 통해 필름을 교환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외교공관을 통해 은밀히 들여온다.

해외의 북한공관 문화담당 서기관의 가장 큰 임무는 주재국 영화 정보와 필름수집이다.

문헌고 책임자도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그는 비정상적 경로로 복제필름이나 암시장 물품을 사 평양으로 보낸다. 이른바 ‘100호 물자’다.

김정일은 새 필름이 들어올 때마다 빠짐없이 본다고 한다. 영화는 김정일의 취미이기도 하지만, 그가 바깥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창구의 구실도 하고 있다.

문헌고와 김정일의 인연은 남다르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공무에 빼앗겨 혼자 지내기 일쑤였던 그에게 문헌고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였던 셈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안목과 지식은 이 문헌고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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