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생활 7년 만에 자본주의에 적응하게 됐다는 탈북자 여만철·이옥금씨 부부가 지난 세월동안 온 가족이 함께 사용해 온 30여개의 헌 저금통장을 꺼내 보고 있다. /김진평기자 jpkim@chosun.com

탈북자 여만철(55)·이옥금(52)씨 부부는 최근 대구로 내려갔다. 94년 세 자녀와 함께 서울에 정착했던 여씨 부부는 25일 대구 장기동에 북한식 음식점을 연다.
“아이들 떼놓고 돈 벌러 갑니다. 그래야 통일되고 나서 북의 친척들 볼 낯이 있죠.”

하지만 부부의 마음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번이 세 번째 식당 개업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씩의 성공과 좌절을 겪었다. 여씨 부부는 98년 온 가족이 4년간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한 돈과 정착금으로 서울 면목동에 음식점을 열었다.

“장사가 너무 잘 돼 금방 떼돈을 버는 줄 알았다”는 여씨 부부의 흥분은 99년 말 더큰 돈을 들여 확장개업을 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결국 권리금 등 4000만원을 날린 뒤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부인 이씨는 냉면 뽑는 기계에 두 손가락을 잃었고, 사업 실패의 충격으로 뇌졸중이 온 남편 여씨는 최근까지 언어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14년간 매달 9만7000원의 은행상환금이 남은 25평짜리 아파트, 세 자녀와 함께 사용해 온 헌 저금통장 30여개, 대구 가게 자본금 3000여만원…. 여만철씨 가족의 남한생활 7년의 ‘손익계산서’다. 부부는 “이제 ‘장사’가 뭔지 알았으니 다시 실패하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선을 넘어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의 경제에 익숙해지기까지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흔하다.

탈북여성 조모(53)씨는 신용불량자다. 97년 세 자녀들과 국내에 온 그는 이듬해 은행돈 1억원을 빌려 서울 강남에 한식집을 열었다. 1년 만에 문을 닫게 됐을 때 남은 것은 신용카드 빚 3000만원이었다. 조씨는 “이자 붙는 것 보니 정말 무섭더라”며 “남한사람이었다면 ‘뒷자본’(주위의 도움)을 조달할 수 있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탈북자들은 “빨리 돈을 모아 성공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탈북자자원봉사단의 김성민(40) 단장은 “탈북자들이 ‘여기서 해놓은 것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가장 가슴 아파한다”며 “탈북자들은 그 답으로 ‘돈’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탈북자 장모(41)씨는 “만만하다고 시작하는 사업이 열에 아홉은 음식점이지만 세상에 알려진 1~2명 외에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탈북자들의 가장 큰 꿈은 ‘북에서의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탈북자동지회의 장인숙(61) 이사는 “탈북자들은 직장생활을 가장 원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고 말했다. 탈북여성들의 경우, 북에서 교사나 디자이너 등 전문직에 있던 사람조차 환경미화원, 식당보조, 유아원 보모를 전전한다고 했다. 그나마도 말투와 문화의 차이를 견디지 못해 결국 모든 사회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딸과 함께 99년부터 분당에 살고 있는 박모(36)씨 부부는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딸 아이가 학교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등 구김살없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아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재혁기자 jh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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