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환영하지 않는 것으로 한국인들 사이에는 인식돼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도 일본 지식인층의 `통일 한반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1일 전한 데 따르면 이 세미나에서 도쿄(東京)대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교수는 향후 20-25년 사이에 남북한이 통일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통일 한반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취할 대책을 제안하는 형식을 통해 실제로는 `통일 한반도'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

이노구치 교수는 우선 남북한이 연방이든 연합 형태든 통일은 예정된 수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는 통일을 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노구치 교수는 '(일본 정부가) 남북한 통일을 환영하기는 할 것이지만 미군이 평화유지군의 형태로 계속 주둔을 보장받는 선에서 환영할 것'이라면서 '남한측이 미군 주둔에 동의할 경우 일본은 한반도 통합에 대해 환영하는 것 외에는 다른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고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전제로 한 한반도 통일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통일 한반도가 자본주의 시장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남북한 통일을 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제든 어떤 형태든 `통일 한국'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운영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장이 커져 일본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통일을 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군 계속 주둔과 자본주의 체제를 전제로 한 남북한 통일, 즉 일본측에 이익이 되는 통일을 일본 정부가 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기실 한반도 통일이 일본에 이익이 되지 않을 경우 반대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노구치 교수 역시 `통일 한반도'가 일본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통일 한반도'가 러시아와 중국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지금은 북한이 중간에서 차단하는 바람에 러시아, 중국과 분리돼 있지만 남북한이 통일되면 대륙, 즉 러시아와 중국과 근접하게 되고 러ㆍ중과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대륙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 싱가포르, 일본과 한국 간에 각각 추진 중인 자유무역 협정을 비교해 `대륙국가 통일 한반도'의 일본 국익 침해 가능성을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소비국', 일본은 `생산국'으로서 역할 분담을 전제로 일본ㆍ싱가포르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하고 있고 한ㆍ일 간에도 자유무역협정이 '오랫 동안 협상 중'이라고 설명한 뒤 한ㆍ일 간에 중국이 끼어들 경우 일본 국익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한ㆍ일 자유무역보다도 중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중국이 자유무역 협정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일본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ㆍ일 간의 관계도 소비국, 생산국의 역할 설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통일 한반도'는 대륙국가로서 중국에 가까워 질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일본의 이익이 침해받게 되므로 한반도 통일이 걱정스럽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노구치 교수는 '한ㆍ일 자유무역협정은 일본이 한국 시장을 전제로 추진하는 것인데 중국이 포함된다는 것은 일본에게는 매우 어렵게 된다'면서 '따라서 일본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 일본측 구도를 흐트러뜨리는 `통일 한반도'의 앞날을 걱정했다.

겉으로는 통일을 환영한다면서도 속으로는 반대하는 일본 지식인층의 대(對) 한반도 인식의 단면을 볼 수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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