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인인 김만영(45)씨를 북한 시문단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꼽았다.

조선중앙방송은 22일 `위대한 스승의 품속에서 자라난 열정의 시인'이란 제목의 방송물에서 김씨에 대해 '우리 당이 내세워주고 우리 인민의 찬양을 받는 전도유망한 문필가', '시단에 들어선 지 얼마 안됐지만 시대와 인민의 목소리를 훌륭히 대변할 줄 아는 재능있는 시인' 등으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송에 따르면 김씨는 `천리마 운동'의 고향으로 일컫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가 자리잡고 있는 남포시 강선에서 태어나 전기로의 우렁찬 동음을 자장가로 들으며 자랐다.

용해공인 아버지가 일하는 곳은 김씨의 유년시절의 놀이터이기도 해 그는 출강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쇳물을 바라보면서 장차 아름다운 쇳물을 만드는 용해공이 될 것을 꿈꾸었고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용해공이 됐다.

5년동안의 용해공시절은 그에게 '강철로 조국을 받는 참된 노동계급의 자세를 체득하게 했고 쇳물처럼 뜨거운 심장을 지니게 하는 등 미래의 시인을 위한 참으로 귀중한 생활체험의 나날'이었다고 중앙방송은 전했다.

그는 쇳물을 생산하면서도 기업소의 문학소조에 들어가 시창작에 열중했으며 처녀작으로 서정시 `청춘'을 신인들의 작품이 주로 소개되는 월간지 「청년문학」에 발표했다.

그는 문학소조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강선사람들', `위훈이여 너와 함께', `긍지' 등 수십편에 달하는 시를 발표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3년제)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작가양성반에서는 생산현장의 재능있는 근로자들을 선발해 소설과 시 창작 교육을 실시한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현 작가동맹 작가로 배치돼 본격적인 시창작 활동을 벌였다.

김씨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을 추모한 서사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를 발표하면서부터. 이듬해 김 주석 1주기를 맞아 `평양시간은 영원하리라'를 창작했고 그 후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동지', `번영하라 김일성 조국이여', `불멸하라, 위대한 영생의 노래여' 등을 발표했다.

그 공로로 지난 95년 7월 과학ㆍ문예계 모범 종사자들에게 수여되는 `김일성상'을 받았다.

그는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를 찬양한 시도 다수 내놓았는데 대표작은 지난 97년과 99년 발표한 `장군의 눈보라', `2월의 세기를 비친다', `20세기 령마루우에서' 등이다.

올 정초에는 신년축하시인 서사시 `21세기 찬가'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기관지 청년전위 등 주요 신문에 발표했다.

이외에도 `강성대국 행진곡', `그이는 말없이 돌아서시였다', `우등불가에서', `순천이여 그대의 이름은', `그날은 꼭 옵니다', `믿음', `밤노을 타는 구내길에서', `청춘기', `그 이름-강철의 령장'등이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총비서는 김씨의 시에 대해 여러 차례 높이 평가하면서 '노동계급출신의 시인이 좋은 시를 많이 쓴다', '우리 당의 진짜배기 시인이며 세계적인 시인이다', '당의 사상으로 무장한 철저한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다.

김 총비서는 또 작가들 중에서 처음으로 노동당 중앙위 간부들의 전용주택인 평양 창광거리 2계단거리의 고급 주택을 김씨에게 선물했으며 고급 가전제품과 가구 등도 보내주었다.

김씨의 아내 량순희씨 역시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현재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아들 쌍둥이가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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