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대학원이 17일 주최한 ‘북한의 오늘―포용인가 대치인가’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서는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전 대북조정관, 제리 험블(Jerry Humble)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 존 매클로플린(John Mclaughlin) CIA 부국장의 주제발표가 주목을 끌었다. 다음은 그 요지다.


▶윌리엄 페리 전 대북조정관= 한반도 통일은 당장 달성하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화해를 주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많은 발전을 이룩했으나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 (한반도에서) 바람직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미국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한·미·일 3국간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3국의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가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난관에 계속 맞닥뜨릴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긴밀한 한·미 공조를 통해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원해야 한다.

대만식처럼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는 방식의 경제협력이 중요하다. 북한과 다룰 안보 문제의 우선 순위는 핵·미사일·생화학·재래식 무기의 순서가 돼야 하고, 주한미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 대북 문제는 부시 행정부로서 가장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인준 절차 때문에 정책 형성에 여러 달이 걸리겠지만 높은 우선순위를 주어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한반도 정책이 북한이라는 공을 앞으로 몰고 나와 이제 결승선까지는 10m가 남았다. 부시 행정부에 남겨진 과제는 결승선까지 이르는 것으로, 마지막10m가 가장 어려운 법이지만 성공한다면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제리 험블 주한유엔군 부사령관= 북한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실은 북한이 군사 우선정책을 강화하고 군사적 능력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지난 2년간 서울을 사정거리로 한 장거리포를 25% 증가시켰다.

이 포들은 14분이면 발사준비를 완료할 수 있고 110초면 서울에 다다를 수 있다. 북한 미사일은 총 600여개로 늘어났으며, 휴전선 인근의 군사력이 과거 65%에서 70%로 늘어나는 등 전진배치를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여름 군사훈련을 사상 최대규모로 실시했고, 미사일 기지 시설을 건설하면서 대포동 미사일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평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북한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북한이 언제 위협적인 존재로 변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미국은 한국과 함께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유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오판할 수 있다. 북한은 군사력을 감축하고 자원을 재할당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북한과 검증 가능한 상호 신뢰구축 조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몇개월이 중요하다.

▶존 매클로플린 CIA 부국장=북한의 여건이 포용과 대치의 가능성을 모두 갖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전쟁에서 한국과 미국을 패배시킬 수 없으나 지더라도 엄청난 타격을 가할 수 있으며, 이른바 군사력 우선 정책에 따라 군이 그 어느 분야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교적 개방을 어떻게 평가하든 적어도 전술적 유연성만큼은 띠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처신, 조명록 차수의 미국 파견, 외자 유치 노력과 국내경제 일부 조정 등이 그 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변화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도 모르며 예상대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협상의 여지를 잔뜩 확보한 채 책략을 동원하고 여차하면 철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는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을 우리가 막으려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인 염려와 외부지원을 맞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심각한 긴장상태에 놓여 있으며 언제 어떻게 그 같은 긴장이 분열로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
/ 칼리지스테이션(텍사스)=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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