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조건없이 준다.' 모내기철을 맞아 현재 비료 부족을 겪고있는 북한에 대해 비료 20만t(수송비 포함 약 650억원)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정부측 설명이지만 최근 남북관계의 소강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90년대 들어 가뭄, 홍수, 냉해 등 잇단 자연재해로 식량난을 겪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비료, 농업용수, 종자의 농업부문 3대 부족 현상으로 올해도 작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올해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와 대북지원을 하고 있는 남측의 민간단체에 대규모 비료 지원을 이미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UNDP는 최근 특별보고서에서 북한이 올해 농사를 위해 최소한 62만t의 비료가 요구되지만 가용량 27만t을 고려하면 총 35만t이 부족하고 이 부족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북한의 올해 농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UNDP의 비료지원 요청에 대해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이 약 30% 정도의 불필요한 비용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는 판단에 따라 대한적십자사 창구를 통해 직접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같은 인도적 차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번 비료지원 검토는 장관급회담 연기, 탁구 단일팀 무산, 적십자회담 불발 등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유인책'의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당초 지난달 열릴 예정이던 제5차 장관급회담에서 비료지원 문제를 북측과 협의할 계획이었다'면서 '장관급회담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비료지원 문제를 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측은 예년 수준(99년 15만5000t, 2000년 30만t)의 규모로 지원시기를 5월 중순으로 잡고 관련 부서간에 지원 일정과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히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은 18일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를 예방한 자리에서 '북측에서는 5월에 씨를 뿌려야 하는데 (비료를 주는)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며 '정부쪽은 20만t 비료지원 계획을 잡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당국간 회담이 휴지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북측을 회담 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비료라는 유인카드를 활용하려는 정부측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외면할 수 없는 남북관계의 수요를 실제 보여줌으로써 소강국면을 조기에 끝내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대북 비료지원의 '약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즉 북측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에 있는 만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가 끝나기 전에는 북측을 협상테이블로 쉽게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비료지원 검토의 배경이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비료지원만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고 '오히려 이같은 상황에서 비료 지원 등을 통해 남북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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