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한의학 교류와 접목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지난 1월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박수현(35·1993년 귀순)씨가 14일 경기도 성남시에 한의원을 열었다. 한의원 이름은 ‘묘향산’. 그가 탈북하기 전 평안남도 묘향산에서 군복무중 1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진학하는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북한에서도 한의학을 전공(청진의대 한의학부 4년 중퇴)했었다.

박씨가 남쪽에서 다시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자신을 담당하던 경찰관의 전립선염을 고쳐준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경찰관은 길을 가다가도 요의를 느낄 정도로 만성 전립선염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내가 지어준 한약 두 제(스무 첩)를 먹고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경찰관의 적극 권유로 화장품 회사를 그만 두고, 1995년 경희대학교 한의대 예과 2년에 들어갔다.
북한 의과대학 한의학부에서는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허준의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사상의학도 우리 말로 풀어 놓은 것으로 공부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한에서 한자와 영어를 익히느라 무척 힘들었다는 것.

그는 자신이 ‘처방전’을 한글로 쓰는 최초의 한의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직도 한자 사용에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한글로 쓴 처방전을 보여주면서 약재의 효능을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린 약초도 서울에 와서 처음 구경했다고 했다. 북한에선 약초 캐기와 재배만 공부해, ‘자연 상태’의 약초만 보았다는 것이다. 대신 북한에선 침과 뜸을 많이 사용해, 침 놓는 데는 자신있다고 했다.

남한에 온지 8년이 됐지만, 북한에 남아있던 부모와 동생들을 모두 데려 오느라 정착금과 번 돈을 다 써버려, 한의원 개업 때 처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경희대에 다닐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한약을 처방해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박씨의 영향을 받아, 막내 동생도 상지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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