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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誌가 본 유태준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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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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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자 조선일보 '한국 정착 탈북자 유태준씨 공개처형' 보도가 나간 후 뉴욕타임스, NHK 등 유력 외신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다루기 시작했다. 그 중 美 시사주간 타임지(Time誌) 서울지국장 도널드 매킨타이어 기자가 심층취재한 유태준 스토리를 소개한다. 이 기사는 타임지 인터넷 홈페이지(www.time.com)에 실려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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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sia, 2001.4.14]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Where Is He Now?)
중국에서 사라져 버린 한 탈북자의 운명을 둘러싼 미스테리
(서울=도널드 매킨타이어 기자)

평양에서 자란 유태준은 모범생으로서 친구들과 어울려 그들이 즐겨하는 방과후 활동에도 잘 참가했다. 이 나라의 지도자 김일성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거대한 동상을 닦는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그렇지만 유태준은 자신의 나라와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을 몹시 싫어했다.

지방 노동자 도서실에서 유는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등 금서로 지정돼 있어 뒷돈을 주지 않으면 빌릴 수 없는 이런 책들을 빌려다 보곤 했다. 유는 북한을 비판하는 시들를 썼다. 혼자서만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문학'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었고, 말 그대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부(異父) 동생 이근혁씨는 외국 책들이 그의 마음을 자유 사상으로 열어젖힌 것 같다고 했다.

유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와 동생은 1998년 말 북쪽의 국경지대를 통해 북한을 도망쳐나와 중국으로 왔다. 그리고 화물선에 몰래 몸을 실어 한국의 부산항으로 들어왔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탈북자 대열에 들었다. 한국정부는 이렇게 들어오는 탈북자들에게 돈과 임대아파트를 지원한다. 유의 어머니 안정숙씨와 아들 윤호는 나중에 합류했다. 유는 그의 아들과 함께 한국의 시민이 되었고, 대구에 정착해 의료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후회했던 것은 아내를 북한에 남겨두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작년 6월, 확실치는 않지만 유는 이웃 교회집사에게 아들을 맡겨두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가족들은 그 후로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국의 탈북자 사회에서는 그가 북한에 잡혀 탈북자 방지를 위한 시범 케이스로 처형됐다고들 한다. 그의 가족은 뭔가 확실한 사실을 알고 싶어했고, 누군가가 그들을 도와줄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한국 정부는 완강했다. 남북한 관계의 와중에 확실히 휘말려 든 것은 이 가족의 불운이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38선 이북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아니면 남한 당국의 침묵은 이 사건이 인권 침해나 단지 한 사람의 시민이 실종된 것 이상의 문제이기 때문일까?

유는 대구에서 (중국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의 어머니나 동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작년 10월 경찰에서 전화를 걸어와 아들이 중국에서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줬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들은 유의 아들을 집사댁에서 데려가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우겼고, 유의 아파트 임대계약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남북한간 첩보전이 항용 있게 마련인 한국에서 그는 어쩌면 스파이 임무를 띠고 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왜 중국으로 떠나려고 했는지 하나의 단서를 남겼다. 그는 어린 아들에게 엄마를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유의 어머니는 그가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아내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 갔다고 믿고 있다.

지난 달 조선일보 기자인 김미영씨가 한 탈북자로부터 유가 함흥(유가 탈북하기 전 살았던 곳)에서 공개총살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안씨에게 처음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유의 동생이 한국 정보기관과 관련돼 있는 한 탈북자에게 들은 것과 일치한다. 유는 영대다리 밑에서 총살됐고, 그의 이름이 처형된 사람들의 공개 리스트에 올라있었다는 것. 동생 이씨는 그곳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탈북하기 전 그곳에서 두 사람이 처형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틀림 없어요"라고 했다.

한국내 탈북자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는 유는 자신들의 책임소관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의 정보당국도 마찬가지다. 유는 법적으로는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것이다. 한 공보관이 "그 사람은 그냥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일 따름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한 외교부 관리는 달리 말한다. "그는 한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탈북자다." 사사롭게는 정부 관리들이 기자들에게 "그 건은 민감한 사안이다"라고 한다. 서울의 입장은 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그를 찾고 있지 않다는 것. 조선일보의 김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유를 가볍게 공중으로 날려버리려 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서 온 이 나라에 대해 몹시 분노한 유의 어머니는 지난 달 소리를 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경찰이 그에게 한 시간에 최소한 한 번 꼴로 매일 전화할 정도로 "과민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진실을 원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눈물샘을 풀어놓으며 그녀는 유가 얼마나 북한에서 탈출하고 싶어했고, 한국방송을 듣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유가 직접 만든 라디오에 둘이서 어떻게 귀를 기울였는지 말했다.

이제 다섯 살 난 유의 아들 윤호는 아빠에 대해 잘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아빠의 마지막 말은 들려줄 수가 있다. "아빠가 시원한 수박을 사 가지고 온다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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