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는 위풍당당한 첨탑과 대건축이 여럿 있지만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대체로 유리돼 있다. 다만 인민대학습당만은 확실한 예외다. 인민대학습당은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해당되는데 평양시민들에게는 다른 용도로도 생활에 가까이 있는 공간이다.

'인민대학습당'은 우선 공부할 장소가 부족한 북한의 학생들이 숙제(리포트)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대학생들에게는 데이트 장소로도 유용하다. 까페나 영화관 등 연인들이 갈 곳이 별로 마땅찮은 평양에서 인민대학습당은 명분있게 연애하기 좋은 장소다. 금상첨화인 것은 외국인 방문객 등 하루 만 명에 육박하는 시민들이 오가는 이곳에서만은 밥 냄새를 풍기지 않아야 된다는 당국의 방침으로 1층에 위치한 이곳 식당에서는 서양 음식을 제공한다. 식량난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빵, 요구르트, 칼피스, 스메타나, 케피르, 치즈 등 북한에서는 쉽게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 충분히 공급돼 왔다.

17세 이상의 공민증을 소지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이곳에 들어오면 맨 먼저 200g 양권(糧券)과 북한돈 1~2원을 내고, 그날치 식사 예비표부터 떼어놓아야 안심한다. 식당은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예비표를 가진 이용객들에게만 식사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상통제가 더욱 심해지기 전에 이곳 '신간열람실'에서만은 출판물 심사가 끝나지 않은 서방의 다양한 서적들을 볼 수가 있었다. 90년대 초 폐쇄됐지만 이곳을 자주 이용했던 사람들은 세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한 창구였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 인민대학습당 내의 시청각실 모습.
도서관의 기능을 넘어 각종 세미나를 할 수 있는 회의실과 외국어학습을 위한 시청각실 등 현대적인 시설이 갖춰져 있고,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주식시장", "화폐의 유통", "물의 혁명이 일어난다", "베토벤의 일생과 그의 음악사적 의미" 등 생소하고도 풍부한 교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비디오 관람도 자유로운 편이어서 평양시민들에게는 지적 문화적 환기구라 할 만하다.

재작년 작고한 건축가 김기철씨 등이 포진해 있었던 평양시 설계사업소에서 설계와 시공을 맡았고, 돌격대 노동력이 동원된 인민대학습당의 공사는 1980년 첫삽을 뜬 지 1년 9개월만에 끝났다. 북한은 경이적으로 짧았던 공기(工期)에 대해 두고두고 자랑해왔는데 주체사상탑과 함께 82년 김일성 70회 생일에 맞춰 완공한다는 목표가 건축노동자들의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외양은 아름다운 청기와와 대리석으로 전통 양식을 최대한 살렸다. 10만㎡
에 이르는 광활한 부지에 잔디와 분수, 청기와가 정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신 내부는 천정이 매우 높은 서양식 회랑과 10여 개의 열람실, 강의실로 꾸며져 있다.

장서는 약 3000만 권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우상화가 본격화되는 60년대 중반 무렵 북한은 사상통제를 강화하면서 대대적인 분서갱유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민대학습당에 비치할 도서를 모으면서 지난날의 이런 극좌적 문화파괴에 대해 어느 정도 자성하면서 학자나 작가들에게 숨겨둔 책을 꺼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 곳곳에서 숨겨진 책들이 다시 햇볕을 보기도 했다는데 인민대학습당의 장서 가운데는 세계 각지에서 기증받은 책 등 동서고금의 책들이 총망라돼 있다. 1만여 권의 해외동포들이 기증한 책은 '애국도서열람실'을 개설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서가 금서고, 일반열람실의 책은 검열로 심하게 훼손돼 있는 상태여서 엄청난 장서도 사실상 유폐돼 있는 상태다. 특수자료로 분류돼 있는 금서들을 이용하려면 우선 대출목적을 분명히 해서 소속기관의 초급당비서에게 신청서를 내야 한다. 상급기관의 당비서에게까지 가서 허가가 나도, 다시 인민대학습당에 책을 신청해 총장의 허가가 나야 하므로 책 한 권을 빌리려면 최소한 3주는 소요된다. 한국어로 된 책은 거의 복사가 금지돼 있다.

전산화의 수준은 초기부터 대단히 높았고, 열람도서를 전달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천장의 레일에 매달려 있는 상자에 열람희망도서를 넣어 전달하는 시스템으로 모노레일 같은 설치가 돼 있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북한이 자체 개발한 검색 시스템인 '광명'이 쓰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설의 현대화와 외양의 아름다움은 돋보이지만 소장 도서의 폐쇄적 운영이 이 '위대한' 건물의 큰 흠인 셈이다.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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