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 예술단체로는 분단 이후 처음 서울에 온 ‘평양 학생소년 예술단’의 첫 공연이 26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렸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예술단’ 등에서 선발한 8∼17세 단원 78명은 ‘반갑습니다’(합창) ‘제일 고운 옷’(인형춤) ‘옹헤야’(가야금 3중주)와 ‘고향의 봄’ 등 춤·연주·독창·중창·합창을 1시간 동안 선보였다. 태평소(새납)를 개량한 ‘장새납’, 개량 가야금 같은 개량악기, 아이들 놀이를 춤사위로 표현한 민속무용이 눈길을 모았다. 이들은 27·28일 네 차례 더 공연한다. 작가 이상운(이상운)씨가 첫날 공연을 지켜보았다. /편집자

북한 ‘평양 학생소년 예술단’의 이번 공연은 몇 겹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또 성인 예술단이 아닌 ‘미래’의 실체인 소년들의 첫 공연이라는 점은,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압축해 주는 상징으로도 생각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에서 예술의 기능이 무엇일까, 라는 원론적인 질문과 함께, 남한의 이념이 엄연한 현실성으로 숨쉬고 있을 나의 내면과 감수성이 그들의 공연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궁금했다.

마침내 무대 위로 따뜻한 조명이 들어오고, 금빛 문양의 붉은 장막 사이로 10살 전후의 소녀가 등장했다. “먼 곳으로 알았던 남녘 땅이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습니다”하고 시작한 그 소녀는, 반가운 서울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모두들 즐겁게 보아주고, 박수치고, 웃어 달라며 공연의 시작을 알린 뒤,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공연은 합창 ‘반갑습니다’로 시작하여 경음악 ‘백두의 말발굽 소리’, 민속무용 ‘꼭꼭 숨어라’, 민요독창 ‘제일 좋은 내 나라’, 여자독창 ‘고향의 봄’, 손풍금연주 ‘통일렬차 달린다’, 개량국악기 장새납(태평소) 중주 ‘모란봉’, 가야금 3중주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한 뒤, 합창 ‘다시 만납시다’로 끝났다.

음악과 춤은 대체로 우리 정서에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양면성을 지녔으며, 대단히 격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그들의 음악이 전통음악의 모티프에 뿌리를 두는 한편, 강약의 진폭을 크게 하고 템포를 빠르게 변주한 결과일 것이다. 춤동작 또한 우리 전통무용의 모티프를 기본으로 급격한 회전과 각이 진 몸짓으로 변주되어 있었다. 그렇게 격한 춤과 음악을, 숨 돌릴 틈 없이 진행되는 무대전환이 뒷받침했다.

연주 사이 사이 리틀 엔젤스 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꽃다발을 전했고, 평양 학생소년 예술단은 ‘다시 만납시다’를 끝곡으로 선사했다. 객석의 기립박수가 이어지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예술단원들과 청중이 한마음으로 합창하면서 막을 내렸다. 아마도 저 순진한 합창처럼 통일이 그렇게 쉬우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제질서와 골 깊은 상처를 지닌 분단된 남북체제와,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내면의 끈질긴 이기주의가 그 적일 것이다.

공연장을 나서며 우리의 ‘미래’인 저들 남·북 소년들의 얼굴에서, 우리 어른들이 치장해 놓은 짙은 화장을 걷어내고 싶다는 꿈 하나를 가졌다. 아무런 치장도 없는 맑은 맨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이것이 실현키 어려운 몽상임을 알면서도, 이 꿈을 버리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기만 하면 언젠가 치장없는 맨 얼굴의 남북이 진정한 노래와 춤의 한마당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또 하나의 꿈을 가졌다. /소설가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