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북한을 탈출하는 것보다 더 어렵더구만요.”

탈북여성들의 모임인 ‘진달래회’ 회원들은 요즘 새로운 사업준비로 분주하다. 3일부터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청솔아파트의 장터에 진달래회 명의로 가게를 열 예정이다.

장터는 1주일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지만 탈북 부녀자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들 대부분이 한국 정착 후 한 번 이상 사업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94년 일가족이 탈출한 여만철(55)씨의 부인 이옥금(52)씨는 98년 세 자녀와 함께 4년 동안 일해 모은 돈과 정착금 등으로 마련한 8000여만 원으로 98년 서울 면목동에 북한식당 ‘발룡각’을 차렸지만 투자금의 절반을 날리고 작년 6월 문을 닫았다.

이씨는 “북한에 ‘우둔한 놈이 범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자본주의를 너무 쉽게 봤다”고 했다.

95년 탈북한 조연지(41)씨는 북한에서는 ‘의상 설계사(디자이너)’였다. 그는 “남한 디자이너와의 실력 차이를 인정한다”며 “그러나 재봉사가 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차라리 허드렛일을 선택했다”고 했다.

조씨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할 때는 영어로 된 조미료 이름을 모른다며 푸대접 받고, 어린이집 보모로 가니까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북한말 배운다’고 항의해 쫓겨났다”고 했다.

진달래회 장인숙(61) 회장 역시 평양의 김일성주체탑을 설계, ‘김정일 표창’을 받은 경력을 가졌지만 그 실력을 남한에서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한(恨)이다.

97년 말 결성된 진달래회의 현재 회원은 40여명. 장 회장은 “최근 여성 탈북자가 전체 탈북자의 50%를 넘어섰다”며 “이들이 시장경제를 빨리 배워 제 몫을 하는 것이 남북통일 이후 사회통합에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최재혁기자 jh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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