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시 폭격이 곧바로 승리를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지상군 투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주도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39세인 그는 ‘90년대 후반의 미국 국방계획' 등 4권의 저서를 이미 냈고,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등 국제문제 전문잡지의 단골 기고가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논문 제목 중 일부를 훑어보면 ‘기술발전이 해외주둔 미군을 불러들일 수 있는가' ‘중국 군대의 실상' ‘인본주의적 군사개입의 기준' ‘평화의 시대와 전쟁의 기술' 등으로 다양하다.
전쟁과 국방 문제에 관한 한 전방위적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평을 학계에서 듣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신문에 미국 국방정책, 보스니아와 이라크 사태, 미-일 동맹 문제 등에 대해 기고해왔다.
특히 89년부터 6년간 미 의회 예산국(CBO) 국가안보 분과의 국방-외교정책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국방예산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정책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국방정책 형성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국제 안보(International Security)' 98년 봄호에 ‘북한의 도발 방지:남한 방어가 국방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이유'라는 글을 실어 한국내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재 컬럼비아대학과 조지타운대학 겸임교수인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과 기계공학을 공부한 뒤 우드로 윌슨 센터에서 국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엔 콩고에서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2년간 활동했다.
/주용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