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북측의 태도를 정확히 예측하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입장에서 추진해야 한다.

정상회담 개최 합의서를 보면, 지난 91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94년 정상회담 개최 합의서에 명기되었던 쌍방의 국호가 빠져 있다.

북측은 판문점 준비접촉에서 당국이 아닌 민간기구인 아·태평화위원장 김용순 명의로 된 신임장을 남측에 전달하였다.

이는 북측이 우리 정부를 현실적 대화 상대로 인정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여, 정부가 이를 계속 묵인할 경우 변칙적 정상회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상봉이 있게 되며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합의서 내용과 관련, 북측은 ‘회담’보다는 ‘상봉’에 무게를 둠으로써, 만나주는 대가로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데 목표를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모양 갖추기로 준비접촉에서 의제합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주한미군 철수, 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한총련 및 범민련의 자유활동 보장,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등을 거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북측이 이것들을 회담 진전의 조건으로 삼을 것인지, 또는 짚고만 넘어갈 것인지에 달려 있는데, 아마도 남측으로부터 오는 경협의 규모, 종목, 시기, 방법 등을 봐 가면서 결정할 것이다.

이처럼 북측은 실제적으로 경제지원 획득을 목적으로 회담에 응해오면서도 명분상으로는 김정일의 ‘민족대단결 5대방침’ 실현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회담을 정당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유의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평화통일 대계(대계·Grand Strategy)라는 큰 그림의 구도 위에서 정상회담을 운영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현실로 보아 쌍방이 평화공존을 통해 통일로 접근하는 ‘선(선) 평화공존, 후(후) 통일’의 기조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혁명주의 입장에서 평화공존을 ‘분단 고정’으로 매도해온 북측이 공산권 붕괴를 전후하여 남북간에 공존, 공영, 공리를 내비치고 있음에 유의하여 북측을 평화공존의 문턱으로 유도해야 한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바로 평화공존에 관한 틀로서, 그 이행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해야 할 기본적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과 김 대통령이 야당 총재로 있을 때 제기했던 3단계 통일방안을 접목시켜 통일방안에 합의하자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남북간 현안문제 해결을 위해 포괄적 접근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경협은 북측에게 경제회생을 위한 기회인 동시에 남측의 자본주의 유입에 따른 체제위기일 수도 있다.

남측 입장에서는 북한경제 재건과 김정일 정권 안정을 도와주는 한국판 ‘마셜 플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되는 경협을 제공할 경우 인도주의 분야(이산가족, 납북자, 국군 포로 등)와 평화정책 분야(북의 핵·미사일, 남북 평화협정 체결, 군비통제 등)에서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애매한 신축적 상호주의가 아니라 ‘비등가성(비등가성) 동시 이행’의 개념에 기초한 확실한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한반도 문제에 관한 논의가 미·북간 협의구조에서 남·북한간 협의구조로 복원되는 시점에서,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을 명실상부하게 이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측에 대해서는 ‘자주’의 개념이 ‘미군철수’가 아니라 ‘모든 현안에 대한 남북 당사자간 해결’임을 주지시키고, 미국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정책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 등 우방은 보조자적 위치에 머물러야 됨’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 남북관계 개선의 대실험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평화공존을 위한 수단이며, 평화공존은 통일에 이르는 과정이고, 통일은 민족번영을 위한 조건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그 동안 북측의 협상태도로 보아 회담과 합의와 이행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우리가 신중하고 차분한 자세로 회담을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숙명여대 겸임교수·전 통일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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