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외교가 북한 외교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요즘 가장 움직임이 분주한 곳은 외무성 미국국과 참사실이다.

외무성이 바빠지면 지도부서인 노동당중앙위원회 국제부도 함께 술렁이는 것이 상례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중앙당 국제부와 외무성간에 마찰이 잦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0년대말 "외교부는 나의 외교부"라며 외무성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문구는 외무성 청사에 내걸렸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백남순 외무상, 강석주 제1부상, 장창천 미국국장, 김계관 부상

미국국은 장창천 국장을 중심으로 각 과가 업무를 분담하고 있으며 인원은 20명 정도 된다. 현재 미북 간에 정식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정세변화에 따른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당면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미국국의 주요 업무로 돼 있다. 특히 미국과는 기본관계를 중심으로 한 쌍무문제 외에 핵·미사일 등 주요 현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미국국이 독자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기보다는 관련 부서(局)와의 협조아래 업무를 수행한다.

유관부서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 미국국이 기본적인 전략·전술을 입안한 뒤 부서간 협의를 거쳐 김 위원장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아 집행한다. 협의가 지지부진하다보면 시간에 쫓겨 결론 없이 보고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럴 때면 김 위원장으로부터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냐. 내가 재판관이냐"는 호통을 듣기 일쑤다. 그래서 서로가 가급적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한다.

현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늦게 나오는 것은 대개 이런 협의과정에서 합의도출이 지연된 경우이며, 김 위원장의 최종 결심이 수시로 뒤집히면서 빚어지는 혼선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95년 미북 간에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가 제기됐을 때 김 위원장이 하루 저녁에 다섯번이나 결심을 번복해 외교부 실무자들을 당혹케 한 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국 안에서도 주요 실무는 박명국 과장, 한성렬 부국장이 주도한다. 업무처리는 장국장-김계관 부상-강석주 제1부상-백남순 외무상의 라인을 거쳐 김 위원장에게 최종 보고되는 체계를 밟고 있으며, 이것이 대미외교의 핵심라인이다.

90년대 들어 핵문제 등으로 대미접촉이 빈번해지면서 강 제1부상이 자연스럽게 최고의 미국통으로 부상했고, 김계관·박길연 부상, 이용호 순회대사, 이근 유엔주재 차석대사, 한성렬 부국장 등이 차세대 전문가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용호 대사는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실력자로 대미 핵협상 때 경수로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김정일위원장 서기실장을 지낸 이명재의 아들로도 유명하다.

이들을 포함해 외교관의 60∼70%는 국제관계대학 출신이며 20% 정도는 평양외국어대학 졸업생들이다. 나머지는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를 나오거나 중국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영어를 배운 해외유학생 출신이다. 드물게 인민군 정찰국 소속 압록강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후 외교무대에 뛰어든 인물도 있는데 이근 차석대사가 대표적인 예.

미국국이 움직이면 함께 바빠지는 곳이 외무성 참사실이다. 유사시 북한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각종 성명·담화 작성이 모두 참사실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명·담화 등은 사안에 따라 발표주체가 각기 다르게 나오고 있지만 작성기관은 예외없이 외무성 참사실이다. 99년 6월 서해사태 때 인민무력성 대변인 담화, 해군사령부 보도,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 등이 쏟아져 나왔지만 모두 외무성 참사실의 작품이었다.

종종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무성에 대변인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자와 회견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외무성 참사실이 작성한 자료를 조선중앙통신사에 보내 회견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뿐이다. 예외적으로 조평통·조국전선·아태·민화협 등 대남부서 명의의 성명·담화는 주무부서인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가 직접 주관한다.

외무성 참사실에는 책임참사 아래 외무성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10여 명의 참사와 연구원들이 포진해 있어 그때그때 발생하는 현안에 나름대로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김계관·박길연 부상 등이 모두 참사실을 거쳐간 인물들이며, 고성순 책임참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 최고의 필력으로 소문나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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