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사일방어체계(NMD)문제를 두고 한·미 정상 간에 적지 않은 이견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잘 유지돼 왔던 한·미 공조체제와 정상회담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문제는 어느 쪽의 입장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앞서, 한국측의 ‘외교적 실수’에서 야기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들이다. NMD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핵, 미사일 등 이른바 WMD(대량살상무기)확산문제에 관한 한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부시 대통령도 주지사 시절부터 이 문제에 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NMD 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은 왜 그렇게 집착하고 있으며, 러시아나 중국은 왜 절대 반대하고 있을까. 그 근본을 들여다 보면, 2000년대 중반 다음 세대 국제사회를 누가 주도 할 것인가 하는 패권 다툼이 그 바닥에 깔려있다.

미국 일극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신 국제질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미국과, 다극체제를 만들어서 미국의 주도적 영향력을 거부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 중국 간의 세기적 패권 다툼인 것이다.

러시아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냉전(cold war)은 갔을지 모르지만 싸늘한 평화(cold peace)가 유지되고 있다”며, 국제사회 모든 악의 근원을 미국에 돌리고 있다.

중국은 더 하다. 중국은 특히 미국이 다양한 방법으로 점차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일본과 손을 맞잡고 동북아에서의 패권을 추구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저항감이 대단하다.

그래서 중국은 오래 전부터 2030년 정도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경제 안보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고, 국제정치 다극체제의 한 축으로 부상하겠다고 총력을 쏟고 있다. 중국은 이 때문에 오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인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러시아와도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지난 1999년 8월 25일 장쩌민은 키르기스공화국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옐친과 중·러 정상회담을 갖고 ‘다극적 국제질서의 창출’을 위한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다지고, 전 세계를 돌며 공감대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미국도 별 차이가 없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도 상당한 경계와 의구심을 갖는 듯하다. ‘제3차대전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미국 대 중국의 대결’이라는 시나리오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미국이 바로 이런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현안이 바로 이 NMD 문제인 셈이다.

겉으로는 비록 북한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내심은 미국의 영속적인 패권 담보를 위한 강한 집념인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를 위한 가장 손쉽고 매력적인 길이 이러한 국방과학 기술적 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이에 쉽게 양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지금 1972년 SALT I합의를 시작으로 냉전시대 미·소 간의 오랜 노력 끝에 이루어놓은 전략적 군비통제 체제를 사실상 파괴하려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정치 사회에서 이런 경우가 어디 어제 오늘 한 두번 있었던가? 조약은 깨기 위해 맺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았던가?

더욱이 미국은 지금 이 시대 유일의 초강국으로서 이른바 신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다. 그들로서는 SALT추진 당시와는 국제 안보 환경과 위협의 성격이 크게 달라 졌음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한한, 애초부터 ‘강대국 위주 제한주권시대’를 사는 약소국이 함부로 나설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유럽 강국들 또한 이 문제에 무관심할 수가 없고, 내심 반가워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왜 입을 닫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았어야 했다. 근본을 알면 고심하나, 모르면 용감해지는 법이다. 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한다.
/김희상 전 국방대학교 총장(예비역 중장)·미 RAND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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