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소식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적어도 미 국무부 실무자들의 반응은 어느 정도 부정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실무자들의 반응과는 달리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 고위층 지도자들의 반응은 분명히 긍정적이었다. 미측 실무자들은 주로 미·북 협상의 차원에서 반응한 반면, 고위층 지도자들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라는 차원에서 반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앞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크게 나누어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우리의 대북 협상을 얼마만큼 미국의 대북 관계 실무자들과 긴밀하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맹방에도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우리의 맹방도 우리에 대해 비밀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국측이 자신의 대북 협상을 미국으로부터 비밀로 한 사실이 드러나면 한국이 미국에 대해 미국의 대북 협상 정보를 한국 측과 전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로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제일차적 관심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을 방지하는 데 있다. 이 문제는 남북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중국 등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전략균형의 문제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협상의 제일차적 목표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명시적으로 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우선 남북한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상호신뢰를 구축하면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므로 우선은 미사일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대북 경협부터 제공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런 경우 미국은 한국이 대규모 경제협력을 제공함으로써 미사일 협상에서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대북 카드(경제협력)를 무력화하고 미사일 문제는 그대로 남는 결과가 초래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국무부 실무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지도층 인사들의 가장 근본적인 정책과제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한·미 관계는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문제는 한·미간의 문제이기 전에 우리 자신의 문제다. 왜냐하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북 경제협력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북경제협력을 계속하면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생각이다. 다른 정치집단도 그렇지만 북한도 스스로 자진해서 힘의 수단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인센티브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현 단계에서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모든 남북관계 진전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도 현명한 전술은 되지 못한다. 일단 긴장완화를 위한 첫 걸음은 한국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로 대북 경제협력을 통해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단 대북 경제협력이 시작되면 미사일 문제를 북한이 명백하게 해결해 주어야 한다. 만일 북측이 이를 거부하면 경제협력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미국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대북 경협과 안보문제를 신축성 있게, 그러나 확실하게 연계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대미 관계는 스스로 풀릴 것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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