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러 나라의 주요 선거가 겹쳐 정책의 불안정으로 인한 위기발생 가능성이 높다. 외부에서 오는 충격에 대비하고 내부의 불안요인을 최소화하려면 지도자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겠다.

지난번 외환위기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리더십이 약화된 상태에서 일어났다. 올해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선거 때까지 안정된 정책집행이 힘들 것이며, 선거 뒤에도 선거 결과에 따른 정국 변화 때문에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 나라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미국과 일본에서 정권의 향방을 가름하는 대통령 선거와 중의원 선거가 있다. 국내 정치상황의 불안정을 틈타 북한이 제한된 무력도발로 긴장국면을 조성한 뒤 관련국들로부터 모종의 양보를 얻어내려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북한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더 높다. 그러나 북한은 민주국가의 의사결정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를 잘못 예측하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적인 경제위기의 재발 가능성도 있다. 두 번이나 대통령 선거 때 외환 위기를 겪은 멕시코에서도 올해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또 하나의 상습적인 외환위기 진원지인 러시아도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장기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도 무역수지 적자와 주가 폭락 가능성 등의 불안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경제회복이 진행됨에 따라 체질개선의 의지가 쇠퇴하고 있다. 그 동안의 경제회복은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과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희생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제 이들이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을 조직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선거를 앞두고 노동조합의 발언권은 더 세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나라의 경험으로 볼 때 제2의 위기로 가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70년대의 이탈리아가 좋은 예인데 두 번째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야 노조의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가 줄어들었다.

외환위기 뒤 우리 나라의 개혁을 보면 정치 개혁은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았고 공공부문 개혁도 말만 앞서고 실제로는 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 금융부문은 그 동안 부실 처리와 시장 안정에만 매달려 왔다. 부실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혁에 대해서는 아직 청사진도 나와 있지 않다.

한국은 본질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한 그 체제 속에서 그 사람들이 다시 운전하고 있는 나라다. 세계의 흐름에 무지한 관료들, 대출이나 투자대상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못하는 금융인들, 이윤을 극대화할 줄 모르는 기업인들이 다시 손잡고 한국호를 또 위험한 항로로 몰아가고 있다.

경제정책면에서 볼 때 정권 전반기의 무리한 경기부양책은 지난 정권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리더십 공백이 예상되는 다음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또 한번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위기의 뿌리는 비효율적인 공공부문과 취약한 금융부문이다.

만성적 경제위기를 겪는 많은 나라들은 대개 정치에 문제가 있다. 해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치력의 부족으로 이를 실행하지 못해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그대로 끌고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올해가 새로운 위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위기 재발을 방지하려면 지도자가 정치력을 발휘하여 지속적인 시스템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유지해 나가야겠다.

/채수찬 미국 라이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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