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브란트 수상과 동독 슈토프 수상이 처음 만난 1970년 3월의 에어푸르트(Erfurt) 정상회담은 아주 간단히 끝났다.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단 한가지만 묻고 대답하고 헤어졌다.

서독의 카셀(Kassel)에서 두 달 후에 만날 것만 합의보고 끝냈다. 그러나 그 회담은 동서독의 영수가 분단 후 처음으로 만났다는 의미만으로도 통독 노력의 긴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금년 6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로동당 총비서를 평양에서 만나게 되면 그 만남은 에어푸르트 회담과 같은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왜 북한과 통일하려 하는가? 북한주민 2300만이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잘 사는 나라, 존경받는 한국을 만들어 가는 일에 북한동포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함께 자유롭고 부를 누리는 사회에서 행복을 함께 누리게 하려는 동포애를 우리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하나의 자유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한 조건일 뿐이다.

왜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북한이 우리와 다른 통일상(통일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지금까지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와 한나라를 세울 수 없고 그래서 협상에 의한 통일은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차선(차선)으로 안정된 평화공존이라도 남북한간에 합의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펴고 있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용단을 내서 김정일 총비서를 만나려고 결심한 뜻도 우리의 이러한 평화의지를 북한 지도자에 확신시키려는 데 있다.

평양 정상회담은 무엇을 논의하거나 합의를 보아야 할 회담이 아니다. 우리의 북한동포에 대한 애정과 평화공존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구체적인 남북 공존체제 구축 협의는 양측의 의지만 확인되면 그때부터 실무차원에서 해나가면 된다.

평양 회담이 갖는 의미를 분명히 하여야 이 회담에서 우리가 논의해도 좋은 것과 논의해서는 안될 것이 확실해진다.

첫째로 이 회담에서는 ‘공존의사’ 확인 이상은 논의해서는 안 된다. 공존체제는 우리가 이루려는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공존 합의를 위하여 우리의 기본이념과 체제를 훼손하는 어떤 제도적, 규범적, 가치적 양보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는 교각살우(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번 평양회담에서는 우리의 통일 의지, 우리의 구상, 우리의 통일원칙을 분명하게 북한측에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남북회담은 양측의 기본입장을 서로 분명히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양측의 분명한 입장을 서로 교환한 후 기본입장을 토대로 한 공존 원칙을 1971년 11월에 동·서독 기본 조약으로 만들어냈었다. 우리의 경우는 이미 1991년에 기본합의서를 만들어 냈으므로 이번 회담에서는 그 기본합의서 내용의 재확인만 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셋째로 북한의 부당한 요구에 대하여 어떠한 약속도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북한 동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제적 지원 등에 대해서는 융통성을 보여도 좋지만, 북한의 대남공작을 결과적으로 돕게 되는 일에 있어서는 단호한 자세를 유지하여야 한다.

넷째로 명분, 형식, 의식 등에 대해서도 유의하여야 한다. 남북한 대결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싸움이고 정치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대등한 지위가 아닌 어떠한 예우도 거부하여야 하며 상징성을 가지는 의식에는 참여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그동안 김일성에 대한 조문 등 상징적 의식에 대하여 큰 비중을 두어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이번 회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회담 이전에 한국 국민의 단합된 지지를 도출하는 준비과정을 거쳐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당 영수와의 협의, 다양한 계층의 인사와의 논의 등을 가져 두는 것이 큰 힘이 된다. 특히 과거 회담에 참여했던 인사들에의 자문은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평양 영수회담은 온 국민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역사적 행사이다. 지나친 기대와 무엇을 꼭 이루어야겠다는 강박감에 매이면 자칫 역사적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있게 된 하나의 과정이라고 담담하게 생각할 때 소기의 목적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이상우 /서강대 교수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