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북한에서 온 우리 친구 문해성(17).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의 해성군은 지금 대전에서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한국 아이들과 친해지고 사회와 가까이 있으면서 한국사람처럼 생활하기 위해서” 다시 중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해성군은 아직 동급생들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래도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별로 없다고 한다. 다만 중학교 공부도 2학년이 되니 만만치 않다. 반 친구들은 "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냥 대등하게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기분 나쁠 것은 없다. 황해도 재령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해성군은 한국에 들어오기 전 중국에서 1년 반을 지내는 등 탈북과정에서 몇 년을 까먹었다.

91년 전기공이었던 아버지를 감전사고로 잃고 어머니와 두 형이 모두 남한으로 와서 산다. "애들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 같아요." 한사코 "남북한 아이들의 차이점"을 캐묻는 기자의 의도를 따돌리고 "똑같아요. 사고방식도 똑 같아요"라고 말한다.

요즘 해성군의 밤시간은 무척 바쁘다. 조선일보 북한-통일 인터넷 사이트(NKchosun.com)의 "북한친구 만나기"를 찾는 호기심 많은 친구들에게 점잖게 대답해 주는 "북한 과외 선생"으로 맹활약 중이다. 먼저 아이들의 질문을 읽어 보고, 사전도 찾고 가족들에게 묻기도 해서 준비를 한 후 답을 올린다. 같은 사이트의 "탈북인과의 대화" 코너에 "경쟁심"을 느끼기도 하는데 찾아오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 흐뭇하다.

남한 친구들의 질문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애완동물"과 "연예인 스타"에 대해 자주 묻는 것. 거의 모든 아이들의 관심거리인 것 같다. 해성군은 북한에서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고향의 야산에 뛰놀던 노루가 먼저 생각난다. 집에서 기르던 털이 보숭보숭하다고 해서 "사자"라고 불렀던 강아지도 있었다, 그러나 "보초병", "충성이", "귀염둥이" 이런 이름들의 정겨웠던 북한의 개들은 결국 "솥"으로 들어가야 했다. 개 살코기를 찢어 엿에 버무린 "개엿"은 북한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해성군도 무척 좋아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은 곧 ‘식량’이라고 대답해 준다.

연예인도 누구 노래가 좋다는 것은 있지만, 팬클럽을 만들거나 스토킹을 한다는 것은 상상못할 일이었다고 한다. "김일성 김정일만이 오로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해성군의 대답이다. 이름도 또렷이 기억하는 울산의 중학교 3학년생 조형준군은 "북한의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우리 민족 역사의 한 획이었던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교육을 시킬 것 같아요" 이런 식의 ‘심도있는’ 질문을 자주 해 와 해성군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꼬박꼬박 성실하게 대답해 주는 해성군의 모습은 남한 아이들에게 그 자체로 생생한 북한 체험이 될 것 같다. 나중에 종교인이나 경찰이 되어 남들을 돕고 싶다는 해성군의 어여쁜 마음이 그의 대답 한 마디 한 마디에 맺혀 있다. /김미영 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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