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의 산실은 노동당이며 노동당을 움직이는 것은 비서국의 전문부서다. 그 가운데서도 노른자위는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통칭 '중앙당 조직지도부'다.

조직지도부는 외형상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비서국을 구성하는 20개 안팎의 부서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규모와 기능, 역할과 권한은 실로 막강하며 여타 부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북한에서는 당·정·군을 막론하고 가장 힘있는 부서로 조직과 선전을 꼽는다. 소속과 편제가 어떠하든 조직부가 제일이고 선전부는 그 다음이라는 뜻이다. 북한의 각급 당조직에는 조직부라는 부서가 있고 특히 중앙당에 있는 조직부에는 '지도'라는 낱말을 붙여 조직지도부라고 일컫는다.

여기에는 단순히 중앙에 있는 부서라는 차별화 이상의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즉 조직지도부는 다른 모든 부서를 지도하는 부서라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후계자의 유일적 지도체제)가 당의 조직지도부를 통해 구현되며 조직지도부가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대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20개에 이르는 중앙당내 어느 부서에도 '지도'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직지도부는 조직비서 겸 조직부장을 정점으로 4명의 제1부부장과 10여 명의 부부장을 비롯해 300명 정도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의 당·정 조직은 대개 부장-부부장(위원장-부위원장) 체제로 되어 있으며, 드물게 제1부부장 또는 제1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부서도 있다.

부서장이 노쇠 또는 잦은 병치레로 업무를 완벽하게 장악통제하기 어렵거나, 조직의 규모가 방대해 부서장 혼자 조직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제1부부장 직제를 둔다. 물론 조직지도부는 후자에 속한다. 내각 부서 가운데 가장 크다는 외무성의 경우 1명의 제1부상과 8명의 부상이 있는데 4명의 제1부부장과 10여 명의 부부장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조직지도부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은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맡아오다가 1997년 10월 그가 총비서로 추대된 이후 후임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워낙 막중한 자리라 후임을 임명하지 않은 채 김 위원장 자신이 직접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1973년 9월 숙부인 김영주로부터 직책을 물려받은 후 90년대 초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을 빼고는 줄곧 자리를 지켜왔다. 김 위원장은 '당내 당'으로 통하는 조직지도부를 통해 북한 사회의 동향을 손금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으며, 조직지도부를 통해 전체 사회를 장악, 통제하고 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문성술
부장을 보좌하는 4명의 제1부부장은 장성택 문성술 염기순 이용철. 이들은 각각 ▲본부당(本部黨) ▲전당(全黨) ▲행정부문 ▲군사부문의 4개 부문으로 나뉘는 조직지도부의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조직지도부를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자 북한 권부의 숨은 실세들이다. 흔히 북한 고위 권력층을 꼽으라면 주석단서열의 앞자리에 위치한 인물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것은 의전서열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권력은 이들 제1부부장과 10여 명에 이르는 부부장들의 수중에 놓여 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로 3500명에 이른다는 중앙당 전체 당원들의 학습과 당생활을 주관하는 본부당 책임비서다.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의 분신'으로 통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2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1988년에 중앙당 청년사업부장에 올랐으며, 이듬해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무난히 치러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일성 주석 사후 현직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옮겼으니 좌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보직이 보직이니 만큼 사실상 영전이나 다름없다. 장기와 주패(트럼프) 등 잡기에 능하고 노래도 잘 부르며 특히 아코디언 연주는 수준 급으로 정평이 나있다.

문성술은 20년 가까이 조직지도부를 지키고 있는 터주대감으로 조직지도부 초급당 비서를 겸하고 있다. 50년대 말∼60년대 초 '청산리정신·청산리방법'의 본고장인 강서군당 위원장으로 재직시 김 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대사와 평남 행정경제위원장을 거쳐 1981년 중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발탁됐고 84년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80년대 말 정무원 농업부장과 황남도당책 겸 인민위원장으로 나가 권력핵심에서 멀어지는 듯 했으나 91년 5월 현직에 복귀, 만만찮은 저력을 과시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성격에 충성심이 강해 김 위원장의 신임이 각별하다는 지적이다.

염기순은 다소 보수적이면서도 원칙에 충실하며 통솔력과 실무능력을 갖춘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 조직지도부에 있을 때 꼼꼼한 일솜씨로 김 위원장의 눈에 띄었다는 후문이다. 77년 강원도당책과 88년 10월 양강도책을 지냈다.

91년 12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돌아와 94년 6월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사위가 모스크바 유학시절 말썽을 일으키자 제손으로 18호관리소에 보내 김 위원장으로부터 가정혁명화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평가를 들은 것으로 유명하다.

군사담당 이용철은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나 김영춘 총참모장도 눈치를 보는 실세.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일찍이 인민군 작전국장을 지냈고 86년 당중앙위 조사부장으로 중앙당에 발을 들여놓은 뒤 94년부터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과묵하고 치밀한 참모형으로 김 위원장의 군부장악의 손발이 되고 있다.

이 밖에 조직지도부에는 이제강, 홍성룡, 문명언 등 10여명 정도의 부부장이 있다. 이들 가운데 주목할 실세그룹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기실(비서실) 멤버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했던 승정원에 비견되는 서기실은 김 위원장에게 집중되는 문건을 접수, 분류한 뒤 보고해 결재를 받아 하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김 위원장의 일과와 일정을 관리하고 의전과 물자공급 및 사생활까지 관리하고 있다.

서기실 실장 김창선, 의전과 신변경호를 맡고 있는 강상춘, 기쁨조를 관리하는 간부과(5과) 담당의 이제강,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스위스주재 대사 이철 등이 그들. 이들은 평소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직함을 가지고 수면 하에서 활동하는 막후실세로 알려져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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