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은 그 나라 그 민족의 민족성을 닮는다는 설이 있다. 그래선지 한국 토종벌은 지극히 예의 바르다. 벌을 기른 집에서 아이를 낳거나 혼인을 하거나 과거에 급제했을 때 벌통 앞에서 고사를 지내야 집안 일이 잘 풀리는 것으로 알았다. 부모 병을 낫게 해달라든지 모모 사나이의 마음을 움직여달란다든지 벌통 앞에서 정성을 드리면 벌이 오가면서 소원을 이뤄주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선지 새 며느리나 사위가 들면 맨 먼저 벌통 앞에 가 벌통을 세 번 툭툭 치며 신고를 하고, 초상이 나면 검은 베로 벌통을 덮어두어 조의를 표하게 해야 꿀을 많이 따는 것으로 알았다. 이처럼 한국 토종벌은 도덕적이요, 오가며 소원을 이뤄주는 다리이기도 했다.

성품도 유순해서 외세에 관대한 것도 한국사람 닮았다. 외래의 양봉군(군) 속에 토종벌을 놓아 기르면 양봉들이 작당 습격하여 전멸시켜버리는데, 토종벌군 속에 소수의 양봉을 놓아기르면 화목해져 더불어 날아다니며 공생공존을 한다. 토종벌은 유순하여 꿀을 딸 때 벌통을 탁탁 치기만 해도 벌집을 나가 통을 비우는데, 양봉은 억척스러워 별의별 수법을 써도 벌통을 고수하기에 심지어는 가스를 주입하기까지 한다. 유럽의 역사가 칼과 피로 얼룩졌듯이 양봉도 그것을 닮은 것 같다.

천적이 없어 천하태평으로 살아오던 토종벌이 전투적인 양봉의 유입으로 수난의 회오리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백화만발한 그 들판을 양봉에게 빼앗기고 설악산, 지리산 심산유곡까지 쫓겨가 사는데 양봉은 그곳까지 추적, 이 은거하고 있는 토종벌마저 공격하여 한때 계곡에 토종벌의 시체가 낙화처럼 떠내려오곤 했었다. 마치 전통문화를 무참히 유린하고 있는 맹렬 외래문화를 벌들이 연출하고 있는 것만도 같았다.

북한에서 개량 여왕봉 5마리와 그에 딸린 5개 사단의 일벌레를 보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한다. 관계 단체에서는 북한의 토종벌에게 전투사단이 될 것이기에 북송을 망설였으나 토종벌에게 전투훈련이라도 시켜놓았음인지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통보해와 남포항을 통해 여왕봉을 보내주기로 했다 한다. 오가며 소원을 성취시켰던 옛 토종벌처럼 남북을 오가며 민족의 소원을 결실시키는 여왕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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