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게 나온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안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북한은 크게 분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 걱정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모두 시기상조다.

북한도 섣불리 강경대응하지 말고 좀더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시 행정부는 아직 대(대)북한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무부의 고위직은 장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아직도 비어있는 상태다. 이미 내정된 인사들도 상원의 인준 등 복잡한 절차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동,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대만 등에 대해 새 행정부의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아직 대북한 정책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통치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구심(some skepticism)」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구심’은 하나의 ‘태도’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만큼 북한과의 협상 결과에 대해 검증과 확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협상 자체를 전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문제에 대한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협상 목표와 전략에 있어서 클린턴 정부와 차별화될 가능성은 많다. 그런 경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북 전략과 미국의 미사일 협상전략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대북정책에서 한국과 미국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협상목표에 있어서는 양국간에 경쟁적인 긴장도 예상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이 대북협상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미국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물론 남북관계는 민족내부의 문제이므로 미국의 이익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한반도의 상황변화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균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동북아의 균형(equilibrium)은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미국의 이익을 무시한 대북전략은 궁극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이익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남북과 미국의 삼각관계에서 바로 이와 같은 한·미간 이해관계의 잠재적 갈등구조를 자신의 협상전략을 위해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문제는 국내체제가 취약하다는 사실에 있다. 북한은 바로 국내체제(경제)때문에 대남 접근 전략을 시도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내체재(정권)때문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상황은 결코 비관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남과 북, 미국의 삼각관계는 근본적으로 북한의 경제적 곤경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자신감을 잃고 대북 라프로쉬망을 거부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다만 대북접근 과정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협상목표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 하겠다. 그런 목표의 정의 없이 막연한 이상과 희망만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대북정책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게 되고, 북한이 우리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인센티브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불가능하게 된다.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관계를 관리·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남북과 미국이라는 삼각관계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참으로 어렵고 위험한 문제를 제기한다. 단순한 사고는 금물이다.

우리는 지금 동맹과 주적(주적)의 개념이 흔들리는 전환기에 놓여있다. 대북협상 자체를 거부하고자 하는 현실도피주의와, 협상의 성공을 위해 북한의 선의(선의)에 의존하려는 유혹을 동시에 모두 경계하면서, 예리한 통찰력과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새로운 삼각관계를 관리·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