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허근욱(71)씨가 아버지의 일생을 담은 전기를 펴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하 민족변호사로 활약했으며 해방 후 북한에서 우리 국회의장격인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허헌(1885~1951년).

60년 초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하러다녔으니 40여 년만의 작업이 결실을 본 셈이다.

허헌은 3·1운동 공판 때 민족지도자 변론을 맡았고,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다.

1948년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치지도자 연석회의에 김구·김규식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허씨는 6·25 와중인 1950년 10월 남편과 함께 월남했고, 아버지 허헌은 1951년 평북 정주 근처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북한 초대 문화선전상을 지낸 허정숙이 언니고, 외교부 순회대사인 허종이 친동생이다.

-아버지 전기를 쓰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월남후 9년간 숨어지내다 59년 6월 간첩혐의로 구속, 한달만에 무죄로 풀려나오면서부터다. 아버지와 알고지내던 이인, 김병로, 여운홍 선생 등을 인터뷰하고 각종 신문·잡지를 뒤졌다. 90년대 이후 자료가 쏟아져 나와 97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곁에서 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박애주의자였다. 나에겐 정신적인 지도자였고, 삶의 스승이었다. 이화여대 재학시절 한 청년이 보낸 연애편지가 식구들에게 들켜 집안이 벌컥 뒤집힌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방으로 부르시더니 '네가 이제 다 컸구나. 그 청년 한번 집으로 데리고 와라'고 인자하게 타일렀을 뿐이다."

-아버지를 마지막 본 게 언제인가.

"50년 10월 월남할 때, 아버지가 '밤이 어두운데, 어디 가느냐'며 내 이름을 불렀다. '강계 시내에 갔다오겠다'고 둘러대자 '빨리 다녀오라'고 한 게 마지막 대화였다."

-월남후 어떻게 살았나.

"감옥에서 나온 후, 30여 년간 KBS에서 라디오 교양 작가로 근무하다 1989년말에 정년 퇴직했다."

-아버지가 북한에서 최고위직을 지냈는데….

"아버지는 공산주의와 관계없는 사람이다. 48년 가을 평양에 있을 때, 아버지가 하루는 마루바닥을 주먹으로 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남북 양쪽에 단독정부가 들어서는 걸 안타까와하면서였다. 남북한 통일정부가 들어서야 진정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이 온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산가족 신청은 해봤나.

"7남매 중 나만 빼고 모두 북한에 있다. 작년에 신청했는데 안됐다."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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