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착 탈북자가 북의 아내를 데려오려다 북에 체포돼 끌려갔는데도 정부당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유가족의 「입막기」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얼마나 한심하고 장래가 없는 나라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자국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을터인데도 그것은 고사하고 탈북자의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신신당부하고 나중에(아마도 처형사실을 안 뒤) 정부가 지원해준 임대아파트마저 회수해 버렸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98년 탈북해 한국에 온 유태준씨가 북의 아내를 못잊어 중국으로 간 것은 작년 6월이었으며 아내를 중국 국경지역에서 만났으나 북한당국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끌려갔다. 우리 정보당국은 작년 10월 이같은 사실을 알았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씨가 공개처형될 것이 뻔한데도 중국당국에 협조요청은 고사하고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에게도 알리지도 않았다. 유씨 문제를 국제적인 쟁점으로 부각시켰더라면 상황이 달리 전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제문제화하면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남북화해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정보당국은 그동안 유씨 어머니 안정숙씨의 입 단속에만 급급했다. 유씨가 중국으로 간 사실과 체포당한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달라고 사실상 강요했다. 안씨는 이때문에 아들의 구명운동 한번 해보지 못했다.

유씨의 처형으로 5살 난 손자까지 떠맡게 된 안씨는 「당국이 무슨이유에선지 정부가 지원해준 임대아파트마저 회수했다」며 『북한사람이 남쪽에서 총살을 당하게 되면 북한에선 영웅 대접을 하는 데 이 나라에서는 자국국민이 북에서 총살당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침묵만 강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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