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데리러 갔다가 북에서 공개처형당한 탈북자 유태준씨의 납북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석 달 전쯤이었다. 유씨의 어머니 안정숙씨를 만났을 때 쭈뼛쭈뼛 아들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북한에 잡혀갔다는데 정부에서는 무사히 잘 있다고 노출시키지 말아 달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못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기자는 어머니 안씨의 간곡한 부탁이 있는데다 기사화 했을 때 혹시 유씨의 신변에 위험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기사를 쓰지 못했다. 그러다 유씨의 처형 소식을 확인하고는 한참 동안 얼이 빠진 채 앉아 있어야 했다. 만일 석 달 전 그때 유씨의 납치사실을 보도해 문제화 시켰더라면 그가 생명만은 보존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뼈저린 후회 때문이었다.

어머니 안씨에 따르면 유씨는 북한에서도 굳이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리로 올 필요가 없을 만큼 유복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남한을 택한 것은 자유를 위해서였다. 읽고 싶은 글을 마음껏 읽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자유.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기자는 몇 달 전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 남수씨 이야기를 보도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는 5단짜리 책꽂이가 남아있었는데 "사람의 아들" "쿠오바디스" 등의 소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주변사람들은 그가 그림을 잘 그리는 예술가적 내면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96년 인천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해 나가려다가 배가 울산항을 경유하는 바람에 붙잡힌 탈북자 김형덕씨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로빈슨 크루소우"나 "마젤란 세계일주기" 등을 탐독해 마냥 "진한" 자유를 갈망했다고 한다. 남한에서도 그것이 충족되지 않자 그는 제3국 어느 곳이라도 가서 살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북한사람들이 갈망하는 자유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강도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열망도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북한에는 북한식의 인권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다면 "자유"와 "따뜻한 가족"을 위해 사선을 몇번이고 넘나드는 유태준씨와 같은 북한사람들의 역정을 기억해둬야 할 것 같다. 그의 열망에 비해 그의 죽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은 그 사회가 "한 사람"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대접하는가가 척도가 된다. 이 사회가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그 행방을 수소문해 볼 자유도 없고, 국민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도 마냥 방치하는 사회라면, 무엇보다 그것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라면 과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낙관할 수 있을까.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