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한번 다녀오셨습니까.

장전항에서 삼일포로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철조망 너머 들길을 걸어가는 마을 주민들을 보셨습니까. 도로변의 인민학교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어땠습니까.

철조망과 경비병으로 차단의 벽을 만들었지만 언뜻언뜻 바람결처럼 스쳐 와 닿는 사람의 온기에 움찔움찔 놀라지는 않았습니까. 구룡폭포의 장엄한 비경이나 만물상의 기이한 절경보다 더욱 강하게 우리 가슴에 떨림을 남긴 것은 그곳 사람들의 숨결과 삶의 모습이었음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조그만 몸짓 하나, 표정의 변화에서 작은 의미라도 읽어내려고 안달하는 것이 우리의 애절한 심정 아닙니까. 그들은 애써 무심한 척 하는데도 말입니다.

금강산 일대가 이제 관광특구로 지정될 모양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육로로 가서 자유롭게 다니고 해수욕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곳 주민들은 어떻게 될까요? 북한은 금강산 일대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소개시킬 계획임을 현대측에 통보했다고 합니다. 설혹 남아있더라도 동네의 산과 해수욕장은 그들에게 금단의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관광객을 위해 현지 주민을 몰아내거나 차단하는, 세상에 이런 관광도 있습니까. 이런 인권 유린의 관광에서 남북 교류와 화해의 꽃이 피어나기를 우리는 정말 기대하는 것입니까. 현지 주민들의 피눈물을 우리는 알기나 할까요.

금강산·개성 특구 소식과 함께 남북간에는 분단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편지가 오갔습니다. 이제야 겨우 600통의 편지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한반도 분단의 엄혹함을 새삼 실감케 합니다. 우리와 같은 시대에 민족분단을 겪었던 독일에서는 서신교환이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구축된 1961년에도 동·서독 간에 주고받은 편지는 6억통에 달했습니다. 소포는 2800만개가 오갔습니다. 양독 정부간의 조약과 합의문은 실질적인 우편 통신 교류를 인정하고 기술적인 문제들을 보완하는 것이었지, 새롭게 무얼 시작하자는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동·서독이 72년 기본조약을 체결했을 때 그 조문은 불과 10 개에 불과했습니다. 폭넓고 깊은 현실적 관계를 인정만하면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소책자 한권 분량입니다. 마치 통일조약을 연상케 할 만큼 진취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그러나 문서와 현실 간의 괴리는 힘겹기만 합니다.

각종 남북회담에서 문서는 계속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철조망과 차단벽이 사라지지 않고는 훅하는 바람에도 쓰러지는 ‘종이누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 김현호 통한문제연구소장 h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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