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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착 탈북자 북에서 공개처형 당해
김미영  |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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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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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중국의 북·중 국경지대에 갔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돼 북한에서 공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8년 11월 탈북해 한달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대구에서 살고 있던 탈북자 유태준(33)씨는 작년 6월 중국으로 출국한 뒤 9개월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다. 그러나 유씨는 금년 초 함남 함흥에서 공개 총살당한 것으로 최근 전해졌고,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정보당국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8년 탈북해 한국에 온 뒤 봄나들이를 나갔던 유태준씨.


탈북자가 북한에서 처형당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져 왔으나, 구체적인 신원이 밝혀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유씨의 경우 한국에 정착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씨의 공개 처형은 함흥의 많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집행됐고, “남조선에 갔다 온 민족반역자를 처형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다고 한다.

유씨는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에 사람을 보내 부인을 불러내 만났으나, 이 같은 사실이 북한 당국에 포착돼 부인과의 상봉 현장에서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 후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는 대개 3~6개월 정도 걸리며, 그가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한 사실이 드러나 처형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탈북 전 함흥에 살면서 석탄판매소 판매지도원으로 일했으며, 부인은 유씨의 처음 탈북 때 함께 가기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보 당국은 유씨가 북한 당국에 체포당해 북한으로 끌려간 사실을 작년 10월 확인했으나 별다른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남한에는 유씨가 탈북 때 데려온 만 5세된 아들과 유씨와 별도로 탈북한 어머니가 살고 있다.

유씨는 부모가 모두 김책공대를 졸업한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인민경제대학 교수로, 어머니는 외국문출판사에서 일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던 유씨는 독서를 좋아해 톨스토이, 고골리, 셰익스피어 등 세계명작을 두루 읽은 문학소년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바깥사정을 잘 알고 있던 유씨는 고등중학교(중고교) 때부터 이미 반체제 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고등중학교 졸업 후 북한에서는 최고 직장 중 하나라고 할 만큼 권세 좋았던 함남 석탄판매소 판매지도원으로 일했다. 좋은 직업 덕분에 국가안전보위부 간부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고 아들을 낳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꿈꾸어온 탈북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98년 북한을 빠져 나왔다. 아내에게 슬쩍 언질을 했으나 동행을 거부하자, ‘친척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세 살된 아들만 업고 나왔다.

중국에서 밀항해 부산으로 들어와 대구에 정착했던 유씨는 입버릇처럼 북한에 남은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했다. 대구에서 사는 동안 함께 한 여자가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애 엄마만한 여자를 찾기 어렵다"고 말해 왔다고 한다.

남한으로 올 때 그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남한으로 온 그는 탈북자 사회에서도 "외골수" "괴짜"로 통했다. 대구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면서도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전언이다. "자유"와 "따뜻한 가정"을 갈망했던 그는 남한으로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작년 6월 유씨는 아들을 이웃에게 "닷새만 봐 달라"고 맡긴 채 잠적해 중국으로 떠났다.

작년 10월쯤 우리 정보 당국은 유씨가 북·중 국경지대에서 체포된 사실을 어머니 김영숙(58·가명·2000년 2월 입국)씨에게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아들보다 일찍 98년 4월 중국으로 탈북했으나 한국에는 아들보다 늦게 작년 2월에 들어와 서울서 살고 있던 어머니 김씨는 그때까지 아들의 출국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을 비밀에 부쳐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어머니 김씨는 어딘가에 수소문해 볼 기회도 없었다고 한다. 애만 태우다가 비보를 전해 들은 김씨는 "여기서는 키우던 강아지가 없어져도 소동이 나는데 왜 나는 아들을 사지에 보내놓고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던가"라며 애통해 했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사회통제가 허술해진 90년대 들어 공개처형을 늘리고 있으며, 특히 탈북 후 남한 사람을 접촉했거나 기독교를 믿게 된 경우는 극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경우 탈북했다가 남한에 정착했던 사람이 다시 북한에 내려와 체포돼 간 첫 번째 사례로 공개처형한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처가가 있고, 탈북 전 직장생활을 했던 함남 함흥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함흥의 사포구역 영대다리, 만세교 다리밑 등 여러 곳에 공개처형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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