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미 행정부와 대북한정책 조율에 실패한 데 대해 여러 원인과 상황이 지적될 수 있다. 미국지도부의 대북 회의론이나 한국 고위층들의 설명부족, 또는 여건의 미성숙 등이 한·미간의 견해대립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미국 신행정부의 보수적 시각이 본질적 장애요인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 실패의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김 대통령의 대북접근방식이 한국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의 새 지도부는 한국의 남남(南南)갈등 사이를 비집고 들어 김 대통령의 대북 러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그 실제와 속도에서 대다수 한국사람들의 동의를 등에 업고 있었다면 미국은 전통적인 한·미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또 한국 국민의 기대와 보람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도 김 대통령의 ‘보따리’를 그렇게 봉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남북의 화해와 대화를 열망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바라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그 방향의 선두에 선 김 대통령의 노력을 수긍하면서도 점차 독선적으로 변해가는 그의 대북스타일에 실망하곤 했다. 김 대통령은 애당초 남북통일에 하나의 초석을 놓는다는 심경으로 북의 문을 두드렸겠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자세는 대북일변도로 변해 이제는 남북문제의 챔피언이 되겠다는 폐쇄적 소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을 ‘대북창구’로 삼고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요인과 요소를 차단하며 그의 대북정책에 대한 어떤 대내적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그는 지금 경제도, 한·미관계도, 국내정치도 대북의 관점에서 운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다수 경제인들이 ‘현대’를 걱정하고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당에 이 정권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대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 국민은 김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그 전략을 논의하는 데 어떤 보좌를 받으며 어떤 참모기능에 의존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국회의 여과장치도 없다. 대북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졸병’이고 ‘장수’는 김 대통령 한 사람인 형국이다. 많은 국민이 김 대통령의 ‘대북’ 당위성을 긍정하면서도 무엇인가 미심쩍해 하고 불안해 하고 걱정하는 것은 바로 대북문제에 관한 DJ의 ‘원맨쇼’ 때문인 것이다.

전임 정권과 다른 접근방식을 모색하는 부시 행정부가 한국 내의 이런 갈등과 우려와 불안을 놓칠 리가 없다. 게다가 8년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부시는 한국 헌법상 단임인 김대통령이 1년 남짓 임기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것이다. 시간의 이점(利點)을 가진 부시로서는 어쩌면 대북정책을 한국의 다음 정권과 조율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보았음직 하다. 그런 전략에서라면 한국 내의 갈등과 견해차를 파고 들어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 진행을 냉동(冷凍)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여기서 자신이 연 남북화해시대의 문(門)이 닫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한국의 안전과 평화를 책임진 대통령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남은 임기 동안 해야할 일이 무엇이며 대북정책 스타일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내부의 갈등을 줄이는 것인지를 재검토해야한다. 어떤 사람들은 남북의 자주적 해결, 자존심, 미국의 오만들을 거론하며 불쾌감을 표시하는데 김 대통령으로서 그런 것들을 괘념했더라면 애당초 미국에 갈 이유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배알 없어서 이러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도, 남북도, 안전도, 평화도 특히 미국에 결정적으로 달려있다. 나라의 장래가 걸린 문제는 ‘머리’로 하는 것이지 ‘가슴’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수사(修辭)조차 번거로운 것이 미국에 관한한 우리의 숙명이다.

/김대중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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