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51년 만에 북의 형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제발 눈 좀 떠보세요.”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서신교환이 이루어진 15일, 남의 김민하(金玟河·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씨는 8개월째 의식을 잃고 있는 100세의 어머니에게 형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으나 어머니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북의 형이 보낸 애절한 「사모곡(思母曲)」을 어머니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자 김씨는 『이 편지가 8개월 전에만 왔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6일자 조간신문에 난 이같은 가슴아픈 사연은 우리가 분단문제 해결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그러나 김씨는 북의 형에게 답장을 쓸 수 없다.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답장을 주고 받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북측은 그동안의 접촉에서 답장을 주고 받기로 하자는 남측의 요구에 대해 『시범사업이니 만큼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끝내자』는 이상한 논리로 답장을 주고 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 각각 300명이 서로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도 답장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남북서신교환」을 두고서 남북 양측 당국자들은 대단한 화해와 협력을 이룩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답장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기형적이고 취약한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답장이 없으면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이 무슨 편지교환인가.

작년 6월 정상회담 이후 정부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최우선시하고 북의 요구대로 비전향장기수를 대거 보내는 등 온갖 노력을 했으나 지금 이 시점에서 계속될 수 있는 이산가족 사업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서울과 평양에서 세 차례에 걸쳐 상봉행사를 각각 개최했으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마찬가지로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00명씩의 생사확인 작업을 했으나 이 역시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계속 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도 그동안 적십자회담 때마다 논의됐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왜 북한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고, 불신하며 경계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북한이 최근 들어 국제사회와의 관계개선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간세상의 가장 절실한 문제인 「이산(離散」문제마저 철저히 외면하는 그들에게 신뢰를 보낼 나라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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