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분단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한 이산가족 서신 교환자들 중에는 ‘의용군’과 ‘반공포로’ 출신 이산가족들이 상당수 눈에 띄고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양과 서울에서 동시에 진행된 세 차례의 이산가족상봉 때에도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이산가족들이 서울을 찾는가 하면 인민군 출신의 반공포로들이 평양을 찾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충남 서산시에 거주하고 있는 형 황창성(79)씨에게 편지를 보내 온 재북가족 룡성(69)씨, 대전시 유성구에 주소를 두고 있는 동생인 성기훈(65)씨의 소식을 안 북한의 기룡(67)씨, 충북 청원군에 사는 형 김재호(78)씨의 편지를 받은 북한의 재혁(69)씨, 충북 영동군에 거주하는 동생 최병화(65)씨에게 편지를 보내온 병희(72) 씨도 인민군에 징집되면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이산가족이다.

경기도 군포시에 살고 있는 박학조(69)씨를 대신해 인민군에 차출된 북한의 동생 천조(66)씨가 있는가 하면 30살이 넘어 인민군에 징집돼 인천시 남구에 거주하는 딸 한정자(60)씨와 헤어지게 된 북한의 아버지 인기(83)씨도 눈에 띈다.

또 고향인 평북 운산군에 살다 인민군으로 징집되면서 가족과 헤어진 후 남한에서 포로가 되는 바람에 반세기 동안 북한에 있는 여섯 남매를 그리워해야만 했던 반공포로 출신인 인천시 부평구 한상준(85)씨도 있다.

지난해 말 제2차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돼 평양에서 자녀들과 만났던 그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산의 아픔을 그리며 ‘꼭 통일이 되어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 보냈다.

6.25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 1세대는 모두 123만여명. 이 가운데 반공포로 출신 이산가족은 2.1%에 해당하는 2만7천여명에 달한다.

남한 내에서 의용군으로 징집돼 북한에 끌려간 사람들은 현재 그 수가 확인되지않고 있지만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이며 6.25전쟁 이후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도 1만9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군포로, 반공포로, 의용군 출신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유달리 눈길을 끄는 것은 이산의 아픔이 입대ㆍ징집이라는 ‘불가항력’에 의해 발생했다는 데 있다.

'건강하다는 소식만 있으면 된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눈물섞인 속내를 내보인 이들은 면회소 설치나 상봉자 수 확대를 기대하며 이산의 아픔을 삭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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