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회견에서, 그리고 3월 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북한이 50여년간 세 가지를 일관하게 주장한 것 중의 하나가 주한미군 나가라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미군 주둔의 필요성, 심지어 통일 후에도 그 필요성을 공감 내지 인정했다’며 대북 외교의 성과임을 밝혔다.

북한이 과거 남북대화나 회담을 깨고자 할 때는 어김없이 주한미군 문제를 들고 나왔고, 이를 대남·대외 심리전의 중요한 무기로 사용한 사실을 상기할 때,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 내지 공감하였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심리전 무기는 한국 내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데는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실패작이었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이 있게 된 연유가 바로 북한의 남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인정문제는 김정일 위원장 자신이 밝혔던 바와 같이 김 위원장이 “1992년 김용순을 통하여 국무부 캔터 정무차관에게 주한미군은 남북간의 전쟁억지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 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필요한 존재이며 통일 후에까지 주둔해야 한다”고 전달한 것이다. 즉, 이미 1992년에 미국에 사용하였던 카드였던 것이다.

그리고 황원탁 전 외교안보수석은 지난해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김정일이 먼저 주한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그런 뜻을 클린턴에게 전해 달라고 한국측에 부탁했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주한미군 인정 문제는 교섭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북한이 먼저 들고나왔던 사안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정부가 대북외교의 가장 큰 ‘성과’의 하나라고 주장한다면,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 배경에 대하여 특별히 설명할 것이 요망된다.

정부가 이런 설명도 없이 북한의 주한미군 인정 문제를 대북 외교 성과라고 되풀이하면 할수록 많은 의문점을 자초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어떠한 규모의, 어떠한 성격의 주한미군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의심도 많아진다. 즉,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력으로 서울을 불바다 만드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인정한 것이 아닌지, 또는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을 인정하였다고 하면 그 이유는 아마 주한미군이 한국의 대북한 위협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는 역할을 인정하였기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 후까지 미군의 주둔을 인정하였다면, 혹 북한식 통일 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다.

주한미군은 제3자의 인정이 필요 없는 우리의 주권사항이다. 주한미군 철수 및 지위문제는 6·25 직전 트루먼 미 대통령 시절 2차대전 동원체제 해체 과정에서, 70년대 닉슨 대통령의 데탕트 시절에, 그리고 카터 대통령의 도덕외교 강조시절에 각각 제기됐었다.

그 철수 결정과정의 공통점은 미국 국내외 사정에 의하여 제기, 이행되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 정부의 지역적 안보의 필요성이라는 한·미 공통 국가이익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주변환경과 북한의 위협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인정이나, 동의나, 공감이 필요 없는 사항이다.

1938년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를 믿을 만한 인물이라고 평하고 히틀러와 협상 끝에 귀국하는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면서 히틀러와 합의한 문서를 흔들면서 우리 시대에 평화를 가지고 왔다고 외쳤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 후 곧 제2차대전을 일으켰다. 그 역사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김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에 도착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언명하였다. 독재와의 합의는 오로지 힘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유효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신두병 온누리연구모임 회장·전 외무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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