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국청소년바둑경기대회 모습. 해마다 각 도에서 선발된 60~80명의 선수들이 평양에서 바둑경기대회를 갖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신선놀음이라 배척받았던 바둑이 북한 전역에 퍼져 나가고 있다. 아직 장기나 주패(트럼프)만큼 일반에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해금'과 함께 급속히 인기가 번져 나가고 있다. 특히 북송 재일교포들이 바둑을 많이 즐긴다.

바둑은 1991년 체육기술연맹 산하 49개 단체의 하나가 됐다. 이어 1993년부터는 각 도, 시에 바둑협회가 설립됐고, 학교마다 바둑소조가 생겨나 많은 어린이들이 바둑을 배우는데 열중하고 있다.

최근 북한을 떠난 한 탈북자에 따르면 90년대 중반부터 먹고 살 만한 집 자녀들이 주로 바둑소조에 가입해 부모들의 후원을 받으며 바둑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발간되는 바둑잡지나 책들도 북한에 많이 들어가고 있다. 외국서적들이 엄격하게 통제되는데 반해 바둑잡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기사들에게 읽힌다고 한다. 바둑관련 책들은 주로 재일 조총련을 통해 유입되거나 북한을 방문하는 재일교포들이 개별적으로 부탁을 받고 북한의 친척들에게 가져다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남한 책들은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지만 바둑관련 잡지나 책들은 바둑을 배우는 기사들이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바둑에 대한 북한 당국의 관심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소년기사들이나 바둑을 웬만큼 두는 사람들은 한국의 유명 프로기사인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등의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양강도 혜산시의 공예품공장을 비롯해 여러 공장에서는 조개껍질 등을 이용해 바둑알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평양에는 최근 바둑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평양바둑원'이 설립됐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하기도 했다.

유명 기사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98년 11월 일본 요코하마시에서 열린 세계 여자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던 조새별(여·아마6단)에게 '공훈체육인' 칭호가 수여됐다. 작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아마추어 페어바둑선수권대회에서는 림현철(22·아마 6단), 권미현(여·20·아마 6단) 이 우승해 북한바둑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언론매체에서도 청소년바둑경연대회나 주민들의 바둑 두는 모습을 자주 방영하고 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지도자의 특별한 지시가 없이는 바둑이 이렇게 장려될 수 없기 때문에 갑자기 바둑이 번창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오랜 기간 바둑이 북한주민에게 잊혀져 왔기 때문에 아직은 일부 부유층이나 엘리트계층에서 유행하고, 바둑소조에 들어간 학생들 정도가 배울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과거 주패(트럼프) 문화가 순식간에 확산된 것을 보면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는 북한에서 바둑도 머지 않아 일반주민에게 널리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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