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과연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국가가 역사를 주도할 것인가. 21세기의 문턱에서 한국은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논문‘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에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를 선언,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일본계 미국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48ㆍ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신년 특별 인터뷰에서 21세기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후쿠야마 교수는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선 대통령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강한 사법부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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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강효상기자】

―20세기 이데올로기의 경쟁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었다. 21세기의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가.

“21세기 세계는 평화를 위주로 한 민주주의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양분될 것이다. 그 경계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여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처럼 발달된 국가들의 경우 군사적 경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세계에는 빈국지역과 비민주지역이 있으므로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민족간 갈등과 중동지역에서의 무력갈등, 테러활동 등이 있겠지만 경제가 발달되고 민주주의가 발달된 국가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할 만한 이데올로기는 없을 것이란 말인가.

“21세기 전체로 따지면 너무 미래의 일이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나타날 성싶지 않다. 만약 세계 경제공황이 닥친다면 비민주적인 정치운동이 반작용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

―현재 등장하고 있는 글로벌 갈등 중에는 강대국들이 끝없는 물질주의를 추구해서 비롯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물질주의가 갈등의 원인은 아니다. 물질적 발달은 민주주의의 발달을 가져오고 그것은 결국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

―미국의 경제적 성공이 다소 공평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아시아 시장개방요구에서 보듯이,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개방을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나는 그런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준 것은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폐쇄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장기적인 무역흑자를 낼 수 있었다. 이제 두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만큼 무역관계에서 호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

―레스터 서로 교수는 그의 저서 ‘헤드 투 헤드(Head to Head)’에서 유럽연합(EU)이 궁극적으로 미국 및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EU는 효율성이 점점 좋아질 것이다. 통일된 유로화폐 등으로 인해 체제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큰 경기침체(Major Recession)가 닥치는 것이다. 경기호황기에는 서로 다른 나라끼리 정책 통일이 쉽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렵다. 유럽국가들은 진보적 좌파의 영향으로 복지가 지나치게 후한 경향이 있는데, 이를 줄여야 한다. 이 문제가 유럽의 장기과제이다. ”

―동유럽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제3의 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동유럽의 경우 폴란드나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발칸국 등 서유럽 스타일을 채택한 국가들은 이미 서방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되었다. 구 소련지역은 문제가 다르다. 변화를 감독할 만한 정부기관이 없어 진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화적 한계도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시장경제가 미숙한 상태에서 선거가 계속되는 어려움이 있다”

―일본은 21세기에 어떨 것인가.

“일본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기술이 중요하고, 더 작은 규모의 기업이 필요하다. 융통성도 더 요구되고 벤처자본도 중요해진다. 이런 분야에서 일본은 약하다. 일본은 주요 개혁분야에 있어서 의지가 약한 것 같다. ”

―중국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중국의 경제성장 이유는 레니니즘(Leninism)이나 마르크시즘(Marxism)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경제 도입이나 사유재산 허용 등으로 레니니즘과 마르크시즘을 해체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정치적으로 민주화와 참여의 욕구가 커진다. 한국의 1980년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경제 체제간 모순이 많을 때는 사회적인 압력이 세진다. 결국 중국은 앞으로 10∼15년을 잡고 볼 때 정치체제가 바뀌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권위주의적인 중앙집권 체제는 더이상 중국에 적합하지 않다. ”

―21세기에 등장할 통일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가까워질 가능성에 우려하는 워싱턴 분석가들도 있는데.

“미국보다 중국에 경도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같다. 한국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이 중국보다 훨씬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에서 더 중요해지겠지만, 미국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앞으로 한국이 통일될 경우 북한재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데, 중국이 도와주지는 못할 것이다. ”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국가들이 서구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동양이 모든 정치관념을 서양에서 일방적으로 수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서양의 법치주의(Rule of Law)를 보다 적용할 필요는 있다. 동양의 경우 인간관계가 서양과는 좀 다르다. 우정, 인맥, 친인척 관계 등에 의해 주로 좌우되고 법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딱딱하다고 생각한다. 동양에서 이방인에게 가족이나 친구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동양도 현대 글로벌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선 법치주의가 필요하다. 동양에서도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법치주의가 강한 나라들이다. ”

―한국도 서구식 제도는 그럴 듯하게 갖추고 있는데 제대로 안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국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어느 국가, 어느 체제도 문제를 갖고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본격 경험한 것은 1987년부터 12년 밖에 안된다. 여러 문제가 있고, 각 기관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은 부패문제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 강하고 독립적인 사법부의 건설이 시급하다. 현재 한국의 사법부는 지나치게 대통령과 행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 그래서 부정부패에 관한 재판을 하더라도 진짜 범죄(Real Crime)를 저질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동기(Political Motive)에 의해 재판을 받는 것인지, 의심받고 있다. 부정부패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법부 독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

―1995년 저서인 ‘신뢰(Trust)’에서 한국을 상대적으로 신뢰가 낮은 사회로 보았다. 낮은 신뢰가 외환위기의 원인이었다고 보는가.

“한국이 신뢰의 결핍으로 외환위기를 당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한국의 위기는 자본시장에서 자유화의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산업화 정책에 문제가 많았다. 신용의 분배를 정부가 좌지우지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자본이 잘못 배정되었다. 신뢰의 문제는 장기적인 문제이다. 단기적인 위기와는 큰 상관이 없다. ”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보다 서구식 사회체제로 넘어가면서 격렬한 사회변화를 맞고 있다. 이런 방향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모든 국가는 현대화 과정에서 문화적 변화를 겪게 되어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도덕적 규범을 세우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세대동안 사회안정을 유지해온 것은 큰 다행이다.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규범과 사회질서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

―21세기에 한국처럼 단일 민족국가가 겪을 어려움은 없는가.

“21세기의 글로벌 경쟁에서 단일 민족국가라는 점은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출산율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낮은 출산율 때문에 향후 50년 뒤에는 인구가 지금의 반 밖에 안되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그 대신 평균연령은 오히려 올라가 노동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가 앞으로 이민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들이 유리해질 것이다. 한국의 경우 성(성)비율이 큰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너무 많은 현상은 다음 세대에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국남자가 반드시 한국여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 /hs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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