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국의 대북정책 주도 원칙에 합의했다. 동시에 부시는 북한에 대한 다른 견해를 표시했다. 우리는 철저한 한·미 공조를 통하여 시각차를 좁혀서 한반도 평화장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신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뒤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한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동맹관계를 더욱 심화하기로 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양국은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안정, 번영 및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지역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했고, 남북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김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도 지지했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한·미동맹의 기초 위에 남북 평화과정을 제도화하기 위해서 매우 적절한 제휴이다.

그러면서도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는 자기의 솔직한 의견을 토로했다. 그는 북한 지도층의 의도에 대하여 회의적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협상에는 확실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그의 브리핑에서 미국은 당장 북한과 협상을 할 계획이 없으며, 아직도 북한을 위협으로 보고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이처럼 북한체제의 본질과 의도를 부시의 안보팀은 불신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재검토하고 있는 대북정책에서 투명성과 상호주의의 관철을 중시하고 있다.

우리는 차제에 미국의 신 정부가 왜 이와 같은 시각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부시팀은 냉전종식 이후 유일한 초강국으로서 미국은 범세계적 핵 및 미사일 비확산을 최우선 외교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우리는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초강국인 미국과 한국 간에 이견이 생길 수 있다.

클린턴은 우선 북한과 미사일 협상의 틀을 타결한 뒤 검증문제는 실무자들에게 맡기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신 부시팀은 북한이 미사일의 수출, 배치 및 개발을 중단하고 그 이행을 검증케 한다면 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은 적극 지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과 미국이 전쟁과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는 전략목표는 공유하고 있지만 그 실현방법에 대해서는 역할분담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재래식 무기위협을 감축시키고 군사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한국이 주도하고, 핵 및 미사일 비확산은 미국이 주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도 우리는 김정일 답방시 남북 당사자들 간에 실제로 재래식 군사위협을 감축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구체적 행동에 합의를 꼭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실무자들과 사전 합의를 통하여 한·미동맹과 대북 평화협력과정을 조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비단 북한문제만이 아니라, 아태지역에서 공동 이익 및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강대국들의 이익이 교차하는 전략적 다리에 위치한 우리는 그들 간의 세력다툼에 말려드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최근에 키신저가 지적한 바와 같이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계획과 이를 위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 개정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면서, 대 한반도 정책도 대미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보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외교는 이렇게 가열되고 있는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 가능한 한 한반도 문제를 분리시키면서 한·미·일 간의 공조를 다지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한·미·일 동반자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국 및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다. 강대국들이 우선시하는 세력균형 속에서 우리도 우리 자신의 국익을 챙기는 전략적 사고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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