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힘을 바탕으로 한 강경기조일 것이라는 예상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일단 뒷받침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의 평화 제스처에 대한 증거와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 한·미, 신뢰의 위기인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작년 7월 북한 방문에 이어 올 2월 남한을 찾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작년 5월에 이어 올 1월 또 중국을 방문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한반도 문제 개입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 정부의 외교팀도 외교부 장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주중대사·주미대사 임명 등에서 드러났듯이 전통적인 미국 중심에서 다소 벗어난 양상이다.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ABM(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의 보존·강화’란 표현을 넣었다가 하루만에 ‘미국 입장에 호의적 이해’를 밝혀야 했던 것은 “미국이나 러시아 모두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일”(백진현 서울대 교수)이자 “ABM조약 논란은 그냥 덮을 수 없는 외교적 실수”(하영선 서울대 교수)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으로서는 ABM조약 파문을,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 추진 후 보여준 누적된 인식의 결과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NMD 갈등이 해소된다고 해도 상처는 크게 남을 것”(현홍주 전 주미대사)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 접점 찾아야 할 대북관

“같은 포용정책이지만,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미국 입장이고, ‘대북 관계가 개선되면 점차 해결된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이호재 고려대 교수). 부시 정부 출범 이후 양국간의 입장 차이를 요약한 말이다.

대북정책의 우선순위, 속도 등에서 양국이 상당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의 변화를 검증하려 하며, 분배 과정과 용도에 대한 검증없이 한국 정부가 북한에 지원하는 금강산 관광 대가, 식량 등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반면 우리 정부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확신하고 미국을 설득하려 하며, 올해도 더욱 대북지원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원을 바라면서도 변화의 증거를 내놓는 데는 인색해, 한·미간 관점의 차이가 쉽게 해소될지 주목된다.

◆ 주한미군과 동맹관계

하영선 교수는 한·러 공동성명의 ‘ABM조약 보존·강화’ 파문에 대해 “미국과 50년 동맹이었으니 이제 자주적으로 뭘 좀 하겠다는 세력균형적인 생각을 우리 정부가 했던 것 아니냐”면서, “그보다는 21세기 상황에서 우선 국제정치의 세와 힘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정권교체와 더불어 “해외 미군 주둔의 규모와 기능을 재검토하겠다”(파월 국무장관)고 밝혀 주목되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남·북한간 평화선언 또는 평화협정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다음 수순으로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에 대한 재검토 분위기를 조성하게 돼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작년 10월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조명록 인민군 차수는 ‘남북통일 후 균형자로서 미국의 역할은 용인할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주한미군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말하고 있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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