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열차사고는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당국이 사고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선로가 낡고 철도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어들어 사고의 위험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1997년 황남 해주에서 출발해 자강도 만포로 가던 열차가 희천-전천 사이 개고개라는 내리막 길의 철교에서 탈선해 수십m 다리 아래로 열차 전체가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크고 작은 열차사고가 잇달았지만 이번 사고는 최근 일어난 열차사고 가운데 가장 큰 희생자를 낸 대형 사고로 알려지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사고였다. 당시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정전 때문에 며칠만에 기차가 도착해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언제까지 또 기다릴지 몰라 사람들은 매달려 가다시피 기차에 올랐으며 심지어는 지붕위에 까지 사람들이 자리다툼을 했을 정도로 만원이였다고 한다.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부대가 총동원되어 사고처리를 했고, 민간인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당시 사고현장 근처에서 3대혁명소조원을 했던 한 탈북자에 의하면 인민보안성(경찰)의 내부문건에는 사망자가 2400명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당시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문이 북한 전역에 퍼져 있었다. 식량난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터에 대형사고가 나자 ‘남조선에서 파견한 간첩이 저질렀다’는 정체불명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대형사고시는 이러한 소문이 꼭 따라 다닌다.

그러나 사고가 처리된 후 개천철도국장, 철도담당사령관, 현장철길대 대장이 주민들이 모인 앞에서 공개처형 당했다고 한다. 또 개천철도국 산하 36명의 간부들이 직위 해제됐다. 대형사고의 원인은 철로작업이 채 끝나지 않은 철교구간을 화물열차가 무사히 통과하자 선로공들이 두 번째 열차도 마무리 되지 않은 철교로 무리하게 통과시키다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사건도 다른 북한의 모든 사건·사고처럼 비밀에 부쳐졌지만 입에서 입을 타고 북한 전역으로 퍼져 나가 모르는 주민이 없게 됐다. 실제로 탈북자 중에서도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사고는 북한에서 일어나는 대형 사건사고 중 하나지만, 다른 사고와 다른 것은 사망한 승객들 중 상당수에게 ‘열사증’이 주어진 사실이다. 그만큼 북한당국에서 이 사건의 후유증을 우려해 민심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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