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자유민주 사회다. 따라서 민주당 국가경영전략 연구소 부소장인 황태연 교수가 『김정일에 대한 6·25, KAL기 사과요구 안된다』고 말한 것도 「많은 서로 다른 의견들중 하나」라고 보아넘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논리 자체가 안고있는 문제점만은 보편적인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보며, 또 황씨가 김정일 방한을 추진하는 세력의 논리제공 역할을 한 셈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우선 그는 『김위원장은 유아시절 발발한 6·25전쟁에 책임이 없으므로 침략범죄 용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그런 식이라면 우리는 왜 일제침략시 유아에 불과했던 일본의 현세대 지도층을 향해서 『사과하고 참회하라』고 요구하는가? 그것은 국가의 계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오늘의 일본 지도층이 옛날의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 대표성을 가지고서 사과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김정일 6·25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근거에서인 것이다.

『KAL기 폭파는 김정일이 지휘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과를 요구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도 황교수는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현희씨는 가짜라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김현희씨의 「지령에 따른」 폭파행위에 대한 우리측의 조사는 조사가 아니고 무엇이었는가? 다만 그런 철저한 조사와 인적(인적)증거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그것을 끝까지 부인하고 남쪽의 일부가 그것을 한사코 외면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그런 만행에 대해 북측의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측 유가족들과 울분에 찬 여론의 기막힌 심경에 잘못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울러 『그런 문제들은 「사과」로 해결될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적인 사안』이라고 황교수는 보고 있다지만, 그것은 분명히 도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죄없는 중동 근로자들이 태평스럽게 타고있는 민간항공기를 폭파시킨 학살행위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비전투원들을 향한 오늘의 야만적인 국제테러 행위들을 인류가 무슨 근거와 명분으로 지탄하고 분노하고 응징할 수 있다는 것인가?
/조선일보 2001. 2.28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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