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교환 때 안오니까 사망처리했지. 형이 혹시나 올까 하고 포로들이 돌아온 청진까지 갔었어.' 반공포로 출신인 김한전(70.전북 전주시) 할아버지는 27일 북측 남동생 근전(60)씨가 전해준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열일곱에 갑자기 인민군에 차출돼 부모님 사진 한장 챙기지 못했던 김 할아버지는 여동생 기숙(65)ㆍ문숙(55)씨가 전해준 부모님의 빛바랜 사진을 소중한 선물로 받았다.

인민군으로 남하하던 중 김 할아버지는 50년 10월 강원도 철원에서 포로로 잡혀 부산 동래와 거제도, 논산 포로수용소를 옮겨 다녔다.

반공포로로 남한을 택해 북측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김 할아버지는 다시 국군에 입대해 월남전을 치르는 등 20여 년 간 국군으로 복무했다.

동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해 부모님에 대한 기억, 살던 고향동네(평남 대동군)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가족임을 확인한 김 할아버지는 동생들에게 감귤 한 상자씩 을 선물로 주었고 손목시계도 손수 채워줬다.

이번 방문단에 김 할아버지와 같은 반공포로 출신은 장형섭(78.대전 서구)씨와 최인식(71.대전 대덕구)씨, 최창환(70.경기도 양평)씨 등 3명이 더 있다.

이들 모두 북측이 고향이면서 인민군으로 전쟁을 치르다 포로로 잡혔다가 남한에 잔류하면서 만들어진 이산가족들이다.

장씨의 경우 이번에 여동생 한명과 남동생 둘과 상봉했는데 전쟁통에 모두 숨졌을 것이라는 판단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남측을 택하면서 51년 간 고향과 부모, 아내를 잊고 살았다. 아내 정근섭(77)씨는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인식씨는 누나와 막냇동생을 만났는데 서울 광나루 근처에서 포로가 된 이후 거제도 수용소에서 역시 가족들이 월남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남한에 잔류했다.

최씨는 '밤마다 헤어진 가족들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며 '둘째는 사망했다고 해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누나와 아내를 만나 기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본래 9남매의 대가족이었던 최창환씨도 이번에 누나와 여동생 둘, 남동생 둘을 만났다.

19살에 인민군으로 차출된 최씨는 인천상륙작전 때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다 석방됐고 이후 국군에 재입대했으며 현재는 경기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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