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원으로 서울을 방문 중인 `피바다가극단' 총장(단장) 김수조(69)씨의 일가족은 북한에서도 유명한 예술인 가정으로 밝혀졌다.

김씨가 북한에서 집단체조 연출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고 최고 영예로 통하는 `공화국 영웅' 칭호와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김씨의 형인 수희씨는 지난 99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30여년간 평양연극영화대학 방송예술학 강좌장으로 후진양성에 전력했다. 그 이전에는 한 촬영소에서 연출가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희씨는 월북 전 결혼해 아들 복겸(52.서울 은평구 신사동)씨와 딸 3명을 뒀으며 수조씨가 이번에 이들 조카를 만났다.

수희씨는 월북 후 영화배우인 양혜련(63. 본명 양혜자)씨와 재혼했는데 양씨는 지난 69년 당시에는 드물게 공훈배우 칭호를 받은 유명 배우이다.

일찍부터 뛰어난 미모와 부드럽고 진실한 연기로 각광을 받았던 양씨는 지난 69년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창작 지도한 예술영화 「피바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주인공 어머니가 일제의 토벌로 남편과 막내 아들을 잃는 등 수난을 겪는 과정을 통해 점차 각성돼 가고 혁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진실하게 형상해 냄으로써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는 김일성 주석이 1936년 중국 동북지방의 만강에서 직접 창작했다는 연극 「피바다」를 각색한 것이며, 71년과 72년 혁명가극과 장편소설로 각각 각색됐다.

이에 앞서 양씨는 「유격대 오형제」(1968) 등 수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는 70년대 초반부터 영화배우 활동을 전격 중단하고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산하의 조선영화인동맹 부위원장을 역임, 대내외적으로 북한 영화계를 대표해 활약했다.

80년대 중반 다시 영화배우로 복귀한 양씨는 김 주석에게 충성을 다했던 여자 항일빨치산을 형상한 예술영화 「만병초」(1984)에서 주인공을 맡아 진실하게 형상해 김 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한동안 주민교양을 위한 영화로 활용되기도 했다.

양씨는 이후에도 「기쁨」(1985), 「기다려다오」(1988), 「높은 산정에서」(1989) 등 여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담당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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