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얼마나 좋은 일이야. 다 장군님께서 보살펴주신 덕이야.' '통일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심금을 털어놓을 기회가 오겠지요.' 27일 평양 고려호텔 1822호. 국군포로로 알려진 김재덕씨는 동생 재조씨를 끌어안고 한참동안 얼굴을 비볐다.

꿈만 같던 전날의 첫 상봉이 언제였느냐 싶게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부둥켜 안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얼굴 생김이 꼭 닮은 두 사람은 남북으로 갈라졌던 51년간의 아픔을 이날 하루만이라도 잊고 싶었다.

'어머니를 아직도 네가 모시고 산다니 그 수고가 얼마나 많니. 나는 밥 한술 대접 못한 불효자식이다.' '형님도 어쩔 수 없는 삶이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차남으로서 제가 모셔야죠. 걱정마세요.' 전날 처음 만난 형수 마금순(61)씨와 조카 영옥(40)ㆍ영철(28)씨도 '할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모른다'며 '통일이 되면 할머니를 우리가 꼭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그 동안 청진의 라남기계공장에서 근무했던 김재덕씨는 이날 가슴에 훈장 4개를 달고 상봉장에 나타났다.

'열심히 일한 덕에 이같이 훈장도 받고 잘 살고 있다'던 그는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통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살자'고 말했다.

특히 형수 마씨는 쌍둥이를 낳던 때를 회고하면서 '해산을 하면서 병을 얻었었는데 당에서 의사선생을 매일 집으로 보내 치료해줬고, 6남매 모두를 대학까지 무료로 보내게 해줬다'며 '이것이 모두 장군님의 은덕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카 영욱씨는 '우리는 배급도 무료로 받고, 공부도 무료로 한다'며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이처럼 살고 있는데 우리가 단결해서 함께 살 날이 빨리 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꿈에도 그리던 형님과 형수, 조카들을 만난 기쁨을 눈물로 달래던 재조씨는 '그때가 오겠지'라고 답했다./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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